내 자리. 이석원.
아무래도 금세 지우게 될 글. 1. 집에서 삼십분 거리인 마트에 걸어가서 빵을 사 가지고 다시 집 앞까지 와서야 아뿔싸, 열쇠가 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로 내려가 주차장까지 다녀와야 했지만 죽을만큼 귀찮지는 않았다. 3. 마트에서, 순대 파는 아가씨를 오랜만에 보았는데 퇴근을 하는 중이었나보다. 가게 밖에서 본 그녀는 가게 안에 있을때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4. 누구든지 자기 자리에 있을때 사람은 가장 빛이 난다. 어렸을 때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할때는 위엄 넘치던 선생님들을 학교 밖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면 왜들 그렇게 초라해 보이던지. 5. 선생님 키가 저렇게 작았구나, 등은 굽고, 어쩐지 나이도 더 들어보이네. 하여간에 교실에서 보이던 포스는 사라진 모습들. 6. 비슷한 ..
멈춰선/우주 2016. 4. 15. 01:06
동경에 대하여. 오지은.
동경에 대하여. 고등학교 때였나, 동네 햄버거집에서 버거를 먹고 있는데, 당시 인기가 아주 높았던 지누션이 가게에 들어와서 버거를 먹고 갔다. 당연히 분위기는 난리였다. 서울깍쟁이들이라 대놓고 환호를 보내지는 않았어도 모두 볼을 붉히며 사인을 받으려고 하거나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줄을 서서 사인도 받았던 것 같다. 단지 이동중에 버거가 먹고 싶을 뿐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누션도 딱하다.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멋있었던 지누션의 모습이 아닌 지누션이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자마자 급변한 공기였다. 나와 내 집단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누션의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야 파운데이션 두꺼운거 봤어? 긁으면 긁히겠더라? 키가 생각보다 작던데? 야 머리 열라 커..
멈춰선/책 2016. 3. 22. 00:55
Spotlight, 2015.
---:: 이런 걸 보도하는 게 언론인 입니까? 그럼 이런 걸 보도하지 않는 게 언론인 입니까?::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한다. 시스템이야. 시스템에 집중해야 해. :: 우린 어둠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 ::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 운동을 하셨나요? 저는 육상부였습니다 그는 아이스하키 감독이었어요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게 당신이었을 수도 있었고, 나일 수도 있었고, 우리 중 누구일 수도 있었어요. :: 스포트라이트팀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자신들 스스로 소재를 픽업하기 때문입니다. --- 좋은 영화다.구성 자체도 좋은데 실화라니.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가 주는 먹먹한..
멈춰선/영상 2016. 3. 20. 23:16
미스터 무라카미. 오지은.
미스터 무라카미 ...중략... 창작의 영감은 대부분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뇌의 준비운동 시간에 많이 온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시합전에 몸을 푸는 것 같다. 음악의 경우에는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뒤져보거나 할 때, 너무 잘된 것을 만났을 때 자극이 되어 활성화되기도 하고, 오히려 기가 꺾이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별로인 것 앞에선 용기가 솟아올라 호랑이 기운으로 작업에 임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별로라기보다 내가 멋대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만. 음악의 경우엔 조금 요령이 있다. 십 년 동안 나라는 선수를 굴리는 방법은 조금은 터득했다. 가끔은 혹독하게. 가끔은 너그럽게. 하지만 하루종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지내면서 나는 생초보가 되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냥 열심히 ..
멈춰선/책 2016. 3. 14. 09:01
에피톤프로젝트. 2016 이른,봄.
봄날, 벚꽃 그리고 너.
멈춰선/순간 2016. 3. 12. 22:24
2015년 5월의 다른 어느 날. 오지은.
2015년 5월의 다른 어느 날 얼마 전 병원에서 한동안 창작을 하지 말라는 진단을 듣고그럴 수는 없다고 진료실에서 언성을 높였다. 인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발목 인대가 늘어나거나 끊어지면 인대가 절대 움직이지 않도록 나무판을 덧대거나 깁스를 한다. 나는 무리를 하면 종종 턱이 빠지는데 병원에서 방법이 없다고했다.그냥 빠지지 않도록 하품을 할 때 조심하고딱딱한 것을 먹지 말라고, 평생.삐지 않도록 잘 잡아주는 강인한 발목 인대빠지지 않도록 잘 잡아주는 강인한 턱 인대-를 노력으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오만함 또는 어리석음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에도 인대 같은 것이 있다면 아니 뇌에도 지쳐서 자꾸 멈추는 부위가 있다면한동안 거길 사용하지 않고 회복하도록 두는 것이맞을지도 모르겠다. 할 만큼 했다는 마..
멈춰선/책 2016. 3. 8. 23:49
Have A Nice Day. H.AN.D 2016.
디테일 배우러갔다가 노래만 듣고왔지요. 커피소년, 박원, 데브, 홍대광.
멈춰선/순간 2016. 3. 1. 23:23
김영하. 나는 어떻게 장하나 의원의 후원회장이 되었나.
오래 전 우리 부부는 길냥이 두 마리를 데려다 키웠다. 때로는 그런 작은 결정이 인생을 바꾼다. 아내는 그 후로 동물 보호, 더 나아가 동물의 권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만우절 아침 나는 잠든 아내를 깨우며, “정부가 길냥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기로 했대”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너무 뛸듯이 기뻐하며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장하나 의원이라는 국회의원이 있는데 우리가 그 의원을 후원해야한다”고 선언했다. 아내가 본 기사는 장하나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른바 동물원법에 대한 것이었다. 동물의 본성을 무시한 환경 속에서 학대당하는 전시 동물을 위한 법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그때부터 장하나 의원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시멘트 바닥에..
멈춰선/우주 2016. 3. 1. 16:36
정바비. 공익과 성실의 릴레이 끝에는 어찌 된 일인지 황당한 시민이 있다.
1월 한 달 동안 외국에 있었다. 돌아와서 고지서를 챙겨보다 보니 수도요금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수도꼭지를 튼 적이 없는, 그래서 0원이었어야 할 우리 집 1월 수도요금이 그 전달 요금이랑 똑같았다. 오류겠거니 하고 고지서에 적혀있는 다산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서울시 조례에 의해, 해당월 계량기 검침을 확인 못 하였을시 전월 요금이 부과된다'고 알려주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외국에 있는 동안 검침원과 통화를 하긴 했다. 내가 한동안 못 들어간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그뿐이었다. '그럼 12월 요금으로 부과됩니다'라고 한마디 해줬을 법도 하지만 아니었다. 고지서상에도 '해당 조례에 따라 전월 기준 과금된다'는 문구 따위는 없었다. 분명히 나처럼 장기 부재로 인해 검침을 못 하는 경우들이 있을..
멈춰선/우주 2016. 3. 1. 16:25
정밀아. 겨울끝.
정밀아. 겨울끝. 아무것도 아닌채 흘러갈 수 있는 날에 뭔가를 하고, 뭔가를 입혀서아무것도 아닌 날이 아니게 하는것. 그렇게 또 사는거죠. 꽃을 키우고 또 피우세요. 얘 이름은 골드에요. 하나 샀어요. 6월에 또 만나요-
멈춰선/순간 2016. 3. 1. 16:02
Carol. 2015.
우연이란 건 세상에 없어요.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에요. :: 끝나고 나서야 그걸 해석하려 하는거죠. 벌어질 땐 자기도 왜인지 모르는거에요. 신비의 영역이죠.:: 구구절절이 없는거에요. 그냥 빠지고 시작하는거죠.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아닌게되죠. :: 일상을 가장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일.:: 나도 한번 의지해볼까? 이것도 발전한거에요. 거절하는것 그것도 발전하는거죠. 성장영화에요. 각자의 성장이에요.:: 독립적이면서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서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관계.:: 내가 물러나려 해도 변함없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당신 덕분에. 지속될 수 있는거죠.- from. 서천석, 장성란. 개봉전야 프리미어 시네토크 :: 어깨에 손을 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미려한 순간인가..
멈춰선/영상 2016. 2. 9. 23:30
'빅쇼트'를 보고. 이동진.
..... 한국의 극영화들은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시스템을 비판하는 이야기에서조차그걸 결국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해버리는 오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극중 시스템의 수혜자인 가해자들은 인간적으로도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어서체제를 모의할 때든 합의를 종용할 때든 시위를 진압할 때든 철저희 ‘개인적으로’ 악합니다. 반면에 피해자들은 인간미의 화신이며 거의 성자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그럴 때 극에서 다루는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그저 싸가지 없고 오만한 개인들의 문제로 축소되어버립니다. 그러니 관객은 자신들과 근본적으로 달라 보이는 그런 악한 캐릭터들을 보며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마음껏 분노를 터트리다가손쉽게 카타르시스를 얻고서 극장을 나선 후 말끔히 잊기 쉽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영화..
멈춰선/우주 2016. 1. 28. 2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