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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금세 지우게 될 글.
1. 집에서 삼십분 거리인 마트에 걸어가서 빵을 사 가지고 다시 집 앞까지 와서야 아뿔싸, 열쇠가 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로 내려가 주차장까지 다녀와야 했지만 죽을만큼 귀찮지는 않았다.
3. 마트에서, 순대 파는 아가씨를 오랜만에 보았는데 퇴근을 하는 중이었나보다. 가게 밖에서 본 그녀는 가게 안에 있을때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4. 누구든지 자기 자리에 있을때 사람은 가장 빛이 난다. 어렸을 때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할때는 위엄 넘치던 선생님들을 학교 밖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면 왜들 그렇게 초라해 보이던지.
5. 선생님 키가 저렇게 작았구나, 등은 굽고, 어쩐지 나이도 더 들어보이네. 하여간에 교실에서 보이던 포스는 사라진 모습들.
6. 비슷한 경험을 이후로도 많이 했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 하는 길의, 제복을 벗은 경비 아저씨, 대출 심사를 하느라 엄청 깐깐하게 굴던 은행원 아가씨를 밖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 심판관 같던 위엄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순한 모습에 멍했던.
7. 물론, 그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 다시 그 팽팽한 모습을 되 찾는다.
8. 극적이게도.
9. 그래서 사람은 다 자기 자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10.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건데
11. 지난 잡담회때, 어느 독자가 물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데 작가님도 불안할 때가 있느냐고.
12. 난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 하루, 단 한순간도 불안하지 않은 때는 없노라고 대답해 드렸다.
13. 나 뿐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제 아무리 유명하고 잘 나가는 이라해도, 어떤 이유에서건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은 없었다.
14. 나는 지금 내 자리,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걸까.
15. 그렇다해도 난 이 자리에 얼마동안이나 머물 수 있을까.
16. 문득, 중요한 순간이 있을때마다 되뇌이는 그분의 말이 떠올랐다.
17. "나는 영화를 원한다. 하지만 영화는 나를 원하는가?"
18. 그리스 영화계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가 한 말이다.
19. 그 말을 빌어 나도 나에게 묻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래. 나는 세상을 견디는 것이 아닌 살아내길 원한다. 간절히. 그러나 세상도 나를 원할 것인가? 원하고 있는가?
20. 너무 머지 않은 시기에, 나는 이 문제의 실마리가 조금씩이라도 풀려가길 바란다.
21. 그래서 노력이란 걸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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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지울 글이라 적어두셔서, 실례일까 걱정되지만
내가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는걸까...
(나의) 영화도 나를 원하는가...
내 마음이 딱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