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으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이 먹구름이다. 이걸 하지 않았으면 그걸 좀 제대로 해주었다면 저게 애초 없었다면, 따위의 말들이 문장부호 없이 어지럽게 뒤섞였다가 뭉개지기를 반복한다. 이 반복이 열 번 이상 계속되고 나면 이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주워 담을 수도 없이 이미 벌어져 끝난 일을 두고 왜 새롭게 고통받느냐는 생각이다. 머리를 흔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어본다. 30초가 지나고 나면 나는 앞선 생각들을 처음부터 되풀이하고 있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 명확한건 오직 시작과 끝뿐이다. 나머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
멈춰선/책
2020. 10. 17. 20:32
:: 지나간 시간 때문에, 육신의 아픔 때문에, 누구도 해소해주지 않는 억울함 때문에, 피해의식에 짓눌려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축소되거나 과장되거나 아예 지워진 기억들. 그 기억들을 교차해서 공유하면서 이들은 객관적인 시점으로 사안을 재구성하는 기회를 갖는다.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말은 쉽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내가면서 경험했듯이, 서로 마주하고 아픈 걸 들추어 공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나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으로 객관화하여 이해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기억해내는 것. 그것이 공동체를 회복하는 시작이었다. ::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 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
멈춰선/책
2020. 8. 22. 23:52
::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된다. ... 나는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고 말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 지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뭐가 진짜 이기는 거고 지는 건지조차 구분이 어려워진다. ... 이겨본 사람만이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요컨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자는 것이다. :: 관계가 이어졌다가 끊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명확한 건 오직 시작과 끝뿐이다. 나머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다. 거기서 선명한 원인 한 가지를 찾아내겠다고 애쓰는 건 이미 먹고 있..
멈춰선/책
2020. 8. 20. 23:23
:: 어른이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자연스레 알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흔 살에 가깝게된 지금에도 나는 그 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겼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겨우 떠올린 건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워지면 속을 모조리 내보여버리는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서둘러 벽을 허물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상대가 서운해하고, 서운해하는 상대를 보며 내가 미안해하는 가장 어려운 순간만 견뎌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임..
멈춰선/책
2020. 1. 26. 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