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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간 때문에, 육신의 아픔 때문에, 누구도 해소해주지 않는 억울함 때문에,
피해의식에 짓눌려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축소되거나 과장되거나 아예 지워진 기억들.
그 기억들을 교차해서 공유하면서 이들은 객관적인 시점으로 사안을 재구성하는 기회를 갖는다.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말은 쉽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내가면서 경험했듯이,
서로 마주하고 아픈 걸 들추어 공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나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으로 객관화하여 이해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기억해내는 것.
그것이 공동체를 회복하는 시작이었다.
::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 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맞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그걸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 반면 누군가는 끝내 평가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한다.
...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빼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정말 바꿀 수 없는 건 이미 벌어진 일들이다. 내가 한 말과 행동, 선택으로 인해 이미 벌어진 일들 말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마음이 묶여 신음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얼마나 참담한가.
... 살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가슴속에 큰 구멍이 있어서 아무리 큰 사랑을 바쳐도, 아무리 비싼 보석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대 방향으로 있는 힘껏 도망쳐야 한다.
... 극복하는 인간, 위버멘쉬
... 내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제대로 바꾸고 극복하며 살아내겠다는 이야기다.
오랜 세월 몇 번 되풀이해 읽다보니 위버멘쉬란 단계가 아닌 태도에 붙여지는 이름이 아닐까 싶어졌다.
:: 내용만큼이나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전처럼 드러내놓고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웃는다. 비굴하게 웃을 때도 있고 상냥하게 웃을 때도 있다. 나는 이제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쓴다.
...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본연의 있는 그대로를 강박적으로 드러내서 오해와 구설수를 살 필요가 없다.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이유도 없다.
... 다만 가면을 쓴 채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미칠지도 모른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런 친구는 많을 필요가 없다. 사실 많을 수도 없다.
... 가면 안의 내가 탄탄파지 못하다면 가면을 쓰든 안 쓰든 아무 차이가 없다.
:: 다시 말하지만, 순백의 피해자란 실현 불가능한 허구다. 흠결이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순백의 피해자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걸 측정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또한 언젠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순백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받지 못할 것이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 나는 힘들 때마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 그래서 내 앞의 불행을 이기는 데 최소한의 공간적, 시간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능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선언이었다. 당신에게 그건 다른 종류의 선언일 수 있고 어떤 표정일 수 있으며 특정한 여가 활동일 수도 있다.
아니면 말 그대로 달아오른 마음이 식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며 버티는 방식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만 통하는 객관화의 방법이, 사건과 나를 분리시켜주는 방아쇠가 반드시 있다. 여러분은 그걸 찾아야 한다.
::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라는 것.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