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책머리에[저녁의, 불 밝힌 여인숙처럼 앞으로 10년도] 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모두 예기치 않은 손님들이니 그들이 편히 쉬다 가도록 환영하라! 때로 슬픔에 잠긴 자들이 몰려와 네 집의 물건들을 모두 끌어내 부순다고 해도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하라. 새로운 기쁨을..
멈춰선/책 2016.05.07 23:17
동경에 대하여. 오지은.
동경에 대하여.고등학교 때였나, 동네 햄버거집에서 버거를 먹고 있는데, 당시 인기가 아주 높았던 지누션이 가게에 들어와서 버거를 먹고 갔다. 당연히 분위기는 난리였다. 서울깍쟁이들이라 대놓고 환호를 보내지는 않았어도 모두 볼을 붉히며 사인을 받으려고 하거나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줄을 서서 사인도 받았던 것 같다. 단지 이동중에 버거가 먹고 싶을 뿐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누션도 딱하다.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멈춰선/책 2016.03.22 00:55
미스터 무라카미. 오지은.
미스터 무라카미...중략...창작의 영감은 대부분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뇌의 준비운동 시간에 많이 온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시합전에 몸을 푸는 것 같다. 음악의 경우에는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뒤져보거나 할 때, 너무 잘된 것을 만났을 때 자극이 되어 활성화되기도 하고, 오히려 기가 꺾이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별로인 것 앞에선 용기가 솟아올라 호랑이 기운으로 작업에 임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별로라기보다 내가 멋대로 ..
멈춰선/책 2016.03.14 09:01
2015년 5월의 다른 어느 날. 오지은.
2015년 5월의 다른 어느 날얼마 전 병원에서 한동안 창작을 하지 말라는 진단을 듣고그럴 수는 없다고 진료실에서 언성을 높였다.인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발목 인대가 늘어나거나 끊어지면 인대가 절대 움직이지 않도록 나무판을 덧대거나 깁스를 한다. 나는 무리를 하면 종종 턱이 빠지는데 병원에서 방법이 없다고했다.그냥 빠지지 않도록 하품을 할 때 조심하고딱딱한 것을 먹지 말라고, 평생.삐지 않도록 잘 잡아주는 강인한 발목 인대..
멈춰선/책 2016.03.08 23:49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자주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매우 개인적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전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촬영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웠다가, 한 달 반 만에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밤. 세 살배기 딸은 방 한구석에서 그림책을 읽으며 힐끔힐끔 나를 신경쓰는 기색이었지만, 좀처럼 곁에 오려 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긴장하고 있구나...
멈춰선/책 2016.01.02 23:06
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 김병수.
...불안과 우울은 나와 친구가 되는것을 허락하지 않고그저 내 안에 조용히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가 내가 약해지는 순간 사납게 공격을 한다. 우리는 절대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불안과 우울은 규칙도 없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들은 무차별적으로 그리고 산발적으로 일어난다. 규칙이 있다면 미리 대비를 하거나 피하기라도 하겠지만 규칙이 없기에 그저 주어진 운명처럼 ..
멈춰선/책 2015.12.14 01:56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 그는 영원히 '제때'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채 공항 주변을 배회하게 된다. 그는 현재에 갇혀 있는게 아니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 어떤 곳, '적절치 못한 곳'에서 헤맨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외로움과 공포가 점증해가는 가운데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
멈춰선/책 2013.08.13 00:22
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마음속으로 오늘로 인생이 끝나버리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다음에 찾아올 성가신 감정과 마주하지 않아도 될텐데. 정말로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식탁이었다. 눈 앞의 음식물이 다 없어지고 나니 갑자기 할 일도 없어졌다. 손을 잡고, 새로운 가게를 찾아다니고, 같은 책을 읽고 서로 감상을 얘기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온천탕에 들어가고. 지금까지 당연한 듯이 존재했던 그런 시간들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따로따로..
멈춰선/책 2013.06.16 01:13
오늘의 약속. 나태주.
오늘의 약속. 나태주.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매미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
멈춰선/책 2013.04.05 18:05
침묵의 미래. 김애란.
-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이곳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고통과 인내 속에서, 고립과 두려움 안에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소금처럼 하얗게, 하얗게 결정화된 고독...... 너무 쓰고 짠 고독. 그 결정이 하도 고유해 이제는 누군가에게 설명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입을 잘못 떼었..
멈춰선/책 2013.02.15 01:31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점심에 기대없이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바로 겟!결핍을 책으로 채우겠단 결심이 무색하게, 어렵게 넘기던 조르바씨를 잠시 접고 유쾌하게 랄랄라-하지만, 벌써 8년전 책. 랄랄라-
멈춰선/책 2013.02.02 02:40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이병률.
종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한때는 돌을 잘 다루는 이 되고도 싶었는데이젠 다 집어치우고아주 넓은 등 하나를 가져달(月)도 착란도 내려놓고 기대봤으면아주 넓고 얼얼한 등이 있어 가끔은 사원처럼 뒤돌아봐도 되겠다 싶은데오래 울 양으로 강물 다 흘려보내고손도 바람에 씻어 말리고내 넓은 등짝에 얼굴을 묻고한 삼백년 등이 다 닳도록 얼굴을 묻고종이를 잊고나무도 돌도 잊고아주 넓은 등에 기대한 시절 사람으로 태어나..
멈춰선/책 2012.12.10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