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진 상태에서 미소를 짓기란 쉽지 않다. 서천석.
무거운 짐을 진 상태에서 미소를 짓기란 쉽지 않다. 심리적인 부담이 큰 상황에선 타인이 눈에 잘 들어오기 않는다. 아이를 키울 때도 챙겨야 할 일이 많고, 해줘야 할 일이 많다고 느낀다면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의 눈빛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사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은 그저 아이를 챙기는 노동이 되고 만다. 얼마나 챙겼는지 확인하고, 무엇이 빠졌는지 검토하느..
멈춰선/우주 2016.10.16 21:25
좋은 어른 되기. 허지웅.
내게는 문신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른쪽 팔에 쓰인 글귀가 무슨 뜻인지 물어왔고 나는 그때마다 비밀이라고 말했다. 혹은 ‘탕수육은 소스에 찍어먹는 게 아니라 소스를 부어먹는 것이다’ 정도로 때에 따라 다르게 설명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대단한 글귀라서가 아니다. 이런 종류의 말은 남에게 권할 것이 아니라 입 다물고 내가 혼자 조용히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까먹지 않으려고 굳..
멈춰선/우주 2016.08.18 01:50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것. 오지은.
--이렇게 일상을 공유하는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 할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거의 모든것엔 사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게 수필, 또는 어떤 종류의 소설이나 노래가사의 의미라고 생각을 또 하고. 우리는 거창한것을 사는것이 아니고 작은것들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게 목표라고 감히 생각을 해요.--from. 오지은 podcast.
멈춰선/우주 2016.08.15 23:48
그만큼의 약함과 악함. 이동진.
이번 주에 다시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 GV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세번째로 이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역시나 가슴 속이 꽉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네요. 최근 1~2달 동안 무려 세 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가 개봉-재개봉되었는데, 이 기회에 '걸어도 걸어도'와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인'원더풀 라이프' 역시 재개봉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래 글은 '걸어도..
멈춰선/우주 2016.08.07 11:07
오이와 피클. 서천석.
"스탠포드 감옥실험의 짐바르도가 한 이야기가 있다. 오이를 피클통에 넣으면 피클이 된다. 오이가 아무리 피클이 안 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상황은 우리 행동에 대해 엄청난 지배력이 있다. 나를 너무 믿지 말고 내가 놓일 조건을 바꿔야 한다. 감옥 실험에서 이틀도 안 되어 악랄한 간수로 변해간 학생들이나 상대적으로 선량한 간수 역할을 했지만 결국 악랄한 간수들을 도운 학생들이나 죄수 역할을 한 학생들이나 모..
멈춰선/우주 2016.05.23 16:40
좋은 어른. [권성민PD의 끼적끼적] 해고무효 대법 확정 판결 소식을 듣고.
스웨덴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에 앉아있다. 이제야 한숨을 돌리는 기분이다. 하필이면 작업 몇 개가 모여 있는 정신없는 주였다. 거기에 선배가 제안한 전시회도 예정돼 있었는데, 하필이면 외주제작건의 해외출장 일정이 전시 일정과 겹쳐버렸다. 떠나기 전 그나마 겹치지 않은 하루 동안 전시장을 지키러 오면서, 아직 다 마무리 짓지 못한 작업 거리들을 싸들고 앉았다. 그 와중에 연락이 왔다. 대법원 해고무효 최종 승소 판결.그러니 이 하루 동안 머릿속이 얌전..
멈춰선/우주 2016.05.16 19:50
[왜냐면] 어느 젊은 편집자의 안타까운 죽음.
지난 2월, 한 젊은 편집자가 세상을 떠났다. 근무 중에 사고사를 당한 것이다. 편집자라는 직업 특성상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다니. 이렇게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는데도, 어쩐 일인지 출판 동네는 조용하다. 그는 참으로 책을 좋아하고, 책 만드는 일을 아주 잘하고 좋아하는, 그야말로 타고난 편집자였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은 것은 서점이었다. 그가 속한 출판사에서 광주에 서점을 오픈하기로 하면서 그 생소한 업무..
멈춰선/우주 2016.05.06 18:40
내 자리. 이석원.
아무래도 금세 지우게 될 글.  1. 집에서 삼십분 거리인 마트에 걸어가서 빵을 사 가지고 다시 집 앞까지 와서야 아뿔싸, 열쇠가 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로 내려가 주차장까지 다녀와야 했지만 죽을만큼 귀찮지는 않았다. 3. 마트에서, 순대 파는 아가씨를 오랜만에 보았는데 퇴근을 하는 중이었나보다. 가게 밖에서 본 그녀는 가게 안에 있을때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4. 누구든지 자기 자리에 ..
멈춰선/우주 2016.04.15 01:06
김영하. 나는 어떻게 장하나 의원의 후원회장이 되었나.
오래 전 우리 부부는 길냥이 두 마리를 데려다 키웠다. 때로는 그런 작은 결정이 인생을 바꾼다. 아내는 그 후로 동물 보호, 더 나아가 동물의 권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만우절 아침 나는 잠든 아내를 깨우며, “정부가 길냥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기로 했대”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너무 뛸듯이 기뻐하며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장하나 의원이라는 국회의원이 있는데 우리가..
멈춰선/우주 2016.03.01 16:36
정바비. 공익과 성실의 릴레이 끝에는 어찌 된 일인지 황당한 시민이 있다.
1월 한 달 동안 외국에 있었다. 돌아와서 고지서를 챙겨보다 보니 수도요금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수도꼭지를 튼 적이 없는, 그래서 0원이었어야 할 우리 집 1월 수도요금이 그 전달 요금이랑 똑같았다. 오류겠거니 하고 고지서에 적혀있는 다산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서울시 조례에 의해, 해당월 계량기 검침을 확인 못 하였을시 전월 요금이 부과된다'고 알려주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외국에 있는 동안 검침원과 통화를 하긴 했다. 내가 한동안 ..
멈춰선/우주 2016.03.01 16:25
'빅쇼트'를 보고. 이동진.
.....한국의 극영화들은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시스템을 비판하는 이야기에서조차그걸 결국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해버리는 오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극중 시스템의 수혜자인 가해자들은 인간적으로도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어서체제를 모의할 때든 합의를 종용할 때든 시위를 진압할 때든 철저희 ‘개인적으로’ 악합니다. 반면에 피해자들은 인간미의 화신이며 거의 성자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그럴 때 극에서 다루는 잘못된..
멈춰선/우주 2016.01.28 2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