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으로 매겼던 누군가의 품격 … 정말 같잖고 오만했어, 나. 김혼비
벌써 9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A라는 한 뮤지션에게 완전히 빠져있었다. 그의 노래, 연주, 작사, 작곡, 편곡, 인터뷰에서 내비치는 세상을 향한 시선, 나의 재치를 봐달라고 아우성치지 않으면서 맥락 속에 은근하게 스미는 특유의 유머감각,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언뜻언뜻 드러나는 속 깊은 언행 등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적정선에 모두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A 좋아해?”라고 묻기보다는 “혹시 A 알아?”라고 물어야 하는, 인기 이전에 인지도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소소하게 마니아층이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덜컥 SNS 계정을 만들었다. 그의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생전 그런 건 만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조금 놀라우면서 약간 떨떠름한 기분으로 팔로..
멈춰선/우주 2020. 2. 16. 22:11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 어른이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자연스레 알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흔 살에 가깝게된 지금에도 나는 그 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겼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겨우 떠올린 건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워지면 속을 모조리 내보여버리는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서둘러 벽을 허물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상대가 서운해하고, 서운해하는 상대를 보며 내가 미안해하는 가장 어려운 순간만 견뎌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임..
멈춰선/책 2020. 1. 26. 21:15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김영하. 배철수의 음악캠프.
[관객 모독]으로 유명한 독일의 극작가 페터 한트케는 축구에 관한 특이한 소설 한 편을 쓰기도 했는데요,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라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수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그라운드에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막아내야하는 골키퍼의 불안을 다룬 책입니다. 그런데 불안하기는 키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과 남미의 프로리그,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에서 있었던 286번의 페널티킥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패널티킥의 성공률은 무려 85%에 달합니다. 애당초 골키퍼가 막아낼 확률은 15%밖에 안되는거죠. 그걸 알면서도 골키퍼는 최선을 다해 그 확률을 높이려 애를 씁니다.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막아내기만 한다면 골키퍼는 영웅이 됩니다. 반대로 키커는 심한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감싸쥐게 되죠. 질게..
멈춰선/우주 2019. 11. 4. 23:27
시절일기. 김연수. 2.
: 다행히 나는 나를 이해시키는 게 어려운 만큼 타인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판단하는 데 걸리는 이 지체의 시간이 나는 좋다. : 새삼 내가 하는 이곳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이곳에서 나는 영주하는 자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 지구와 태양이 있는 한 아침 햇살은 영원히 반복되겠지만, 나는 곧 사라진다. 이 시간적 대비가 영원히 반복될 아침 햇살을 순간적으로 아름답게 만든다. . "내 삶은 실수의 백과사전이었어요. 실수의 박물관이었죠" .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찰나에 아치 사이로 막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이나, 그런 순간이면 보이는 거라곤 밝고 둥근 노란 달뿐인데, 그 달이 너무 커서 놀라게 되고 내..
멈춰선/책 2019. 11. 4. 23:05
시절일기. 김연수. 1.
: 시는 형편없었지만, 시를 쓰는 나는 근사했다. :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직 선한 것만 봅니다.' 이런 할머니들이 있어 나는 또다시 장래를 희망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의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 웃는 눈으로 선한 것만 보는 할머니가 됐다. : 가족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가장 친밀한 동시에 가장 오해하기 쉬운 관계니까. : 학교에서 광주항쟁 사진전이 열렸다. 그때 나는 그 사진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니 그 앞에 서기도 전에 그럴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 나를 망설이게 한 건 어느 틈엔가 내 마음에 생긴 검은 그림자였다. 이 그림자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죄책감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연민일 수도, 감정이입에 따른 개인적인 슬픔일 수도 있었지만..
멈춰선/책 2019. 11. 2. 20:16
의연한 악수. 카더가든.
갈 수 없는 좁은 길을 봤어요 쉼 없이 갈망하던 끝에 또 무던히 받아들여진대도 가난한 맘 몫이겠어요 난 멋진 사람이 되어 큰 등불을 켜고 나선 발길 없는 저 큰 나무 아래로 피어오른 아집들이 내려앉길 기다리다 움츠린 손에 다 덜어낼게요 난 그 사람 뒤를 따라갔지만 큰 그림자 푸념뿐인 것을 난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닌데 가만히 가만히 둘까요 난 멋진 사람이 되어 큰 등불을 켜고 나선 발길 없는 저 큰 나무 아래로 피어오른 아집들이 내려앉길 기다리다 움츠린 손에 다 덜어낼게요 뒤처진 불행을 또 마주할 때 난 오히려 더 편해요 난 멋진 사람이 되어 큰 등불을 켜고 나선 발길 없는 저 큰 나무 아래로 피어오른 아집들이 내려앉길 기다리다 움츠린 손에 다 덜어낼게요 또 무던히 받아들여진대도 가난한 맘 몫이겠어요
멈춰선/음악 2019. 11. 2. 19:59
RIP.
so many people love you.don't focus on the people who don't.
멈춰선/우주 2019. 10. 15. 00:26
seoul. RM.
차가운 새벽 공기에 남몰래 눈을 뜨네 이 도시의 harmony 난 너무나 익숙해 내 어린 나날들은 아득하고 빌딩과 차들만 가득해도 이젠 여기가 나의 집인 걸 Seoul, Seoul 넌 왜 soul과 발음이 비슷한 걸까 무슨 영혼을 가졌길래 무엇이든 날 이토록 너의 곁에 잡아두었나 네게 난 추억조차 없는데 난 이제 니가 너무 지겨워 너의 맨날 똑같은 잿빛 표정 아니 아니 나는 내가 두려워 이미 너의 돼버렸거든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love you Seoul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hate you Seoul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love you Seoul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hate you Seoul (Seoul) 가만 있어도 풍경이 바뀌는 bus와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멈춰선/음악 2019. 9. 30. 21:53
Royals. 슈퍼밴드. 박영진, 홍이삭, 김하진, 양지완.
'원래 이런 음악 좋아했어요?' '원래 좋아했습니다.''아 좋아하고? 퍼포먼스도 이렇게 했어요?''살면서 처음 해봅니다' 언니들과 슈퍼밴드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계속 계속.. 이런 즐거움 시즌제로 계속되었으면!
멈춰선/음악 2019. 5. 21. 00:18
이슬아의 문장들 1.
:: 사랑하는 것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무척 잘 하고 싶어 하는 일이고 거의 매번 실패하는 일이다. :: 다시 생각해보니 한가해 보이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다. :: 오늘은 얘한테 같이 자자고 말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한다. 안 말할 자신이 아침에는 있는데 밤에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 사람들의 말하기방식을 신중파와 경솔파로 굳이 분류해야 한다면 내 말하기는 명백히 경솔파에 가까웠다. ::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화살기도를 해. 사주 보러 온 사람들 마주하기 전에 나도 화살기도를 올리거든. 내 어리석음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고. :: 말실수 하지 않게 해주세요.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안 웃긴데 일부러 웃지 않게 도와주세요. 안 좋은데 좋다고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
멈춰선/책 2019. 5. 12.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