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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그건 세상 솓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 정상을 향한 마음만으로는 산에 오를 수 없다. 그렇게 절박하게 오른 산에서 내려와야만 우리는 다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경험한 산의 시간을 세상에 전하며 무채색의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또렷한 희망과 용기를 건넬 수 있다. 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삶을 말할 수 있다.
::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다달이 변화무쌍한 듯해도 멀리서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날들, 이 작은 영화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끔은 궁금했고 나와 동료들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조금씩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매달 돌아오는 취재와 마감을 치르다 보면 그런 불안은 금세 잊혔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내는 데 급급하다 보면 더 먼 미래를 생각하거나 예비하는 일은 남의 일처럼 요원하게만 느껴지기 마련이다.
매년 잡지 열두 권을 만들면서도 정작 내 일기 한 줄 쓰지 못하는 생활을 생각하면 씁쓸했다.
:: 멀어지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멀어졌다. 무거운 중력과 무서운 습관 속에서 나느 ㄴ내가 원한 대로, 나에게 전부였던 산에서 놓여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바란 게 이건 아니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구나.' 늦은 퇴근길, 지하철 창문의 어둠에 비친 내 얼굴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해 문득 여름이 좋아진 건 해가 길어서였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은 태양을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됐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도 아직 오늘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집으로 돌아가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가 다시 주어진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아직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은 태양 아래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그러고 나면 나에게서 멀어졌던 것들이 다시 조금은 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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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중순에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12월이 되어서야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되었다.
아무튼, 나도 산에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