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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인정은 내 존재 가치를 입증받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다만 ‘자기감’이 확립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날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인정하는 기반이 마련되죠. ‘자존감’은 많이 아실 텐데, ‘자기감’이란 자신을 이해하는 감각이에요. 건강한 자기감을 갖기 위해선 나를 표현하는 방법부터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드는 생각, 감정, 행동이 반복되어 나를 형성하는 거니까 그런 부분을 통해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어요.”
정정엽 원장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자기소개의 예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소녀 감성의 어머니와 엄한 아버지 밑에서 둘째로 태어나 첫째와 비교되는 서러움을 겪다가 어떤 경험을 통해 그걸 극복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내와 아이가 연이어 입원 생활을 오래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돈을 많이 버는 게 맞는 삶인가 고민하다 ‘정신의학신문’을 창간하게 됐습니다”란 말을 듣자 확실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정엽입니다”라고 직업만 강조한 소개보다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나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생겼다면 이제 나를 괴롭히는 생각의 뿌리를 뽑고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바꿀 차례다. 생각을 바꾸는 열쇠는 감정에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생각보다 감정이 더 오래 머문다. 그래서 감정은 그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표가 되어준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찰나의 느낌이 일어나고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느냐에 따라 감정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기분과 감정을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행동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정엽 원장은 감정 테이블을 통해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아보고 감정 데이터를 모아 패턴을 분석해보는 연습을 추천한다.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무슨 감정을 느꼈느냐 물으면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아요. 내 감정에 대해 잘 구분할 수 있으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여러 심리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익히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방법도 좋고요. 감정 테이블을 통해 내 감정의 수치를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를 짜증 나게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이 3의 강도만큼 짜증 나게 했는데 내가 7의 강도로 화를 내버린다면 주변에서는 짜증을 유발한 사람보다 나에게 좀 심했다고 말할 것이다. 반면 받은 3만큼 3을 내보낸다면 사회적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되고 내 감정의 찌꺼기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대해 느끼고 대응하는 걸 본인만의 수치로 매겨 내가 어떤 패턴으로 반응하고 있고 평소에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주로 무엇인지 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년 정도 데이터가 쌓이면 ‘내가 화낼 상황이든 슬플 상황이든 무조건 화를 내는 사람이구나’라는 객관적 상황이 보이고, ‘다음에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인지적 개입이 가능해진다. 정정엽 원장은 “나도 기질적으로 화가 쉽게 끓어오르는 스타일이다. 감정 분석 연습을 통해 가능한 한 화나는 상태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면서 웃으며 당부를 전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남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기본 욕구로 깔려 있어요. 저는, 우리가 기본 욕구를 잘 채우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이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는 거예요. 이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은퇴 후 내가 뭐 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괴로워지거든요. 자신의 감정 데이터를 모아보는 건 만족스러운 인생을 위해 누구나 한 번쯤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의 종류와 깊이는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다음의 감정 테이블은 정정엽 원장이 어떤 종류의 감정이 있는지 막연해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어떤 감정이 치밀어 오르면 감정 테이블 중 어디에 동그라미를 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그릇이 훨씬 다양해진다.
@여성동아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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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하면서 잡지를 세권봤는데 여성동아에 읽을거리가 제일 많아서 속으로 좀 놀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