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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삶의 태도가 둘 중 하나일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아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으니 대충 살아야 할까? 세상을 사는 방법이 열정 100 아니면 열정 0이어야 할까? 꼭 열정이라는 게 있어야 할까? 열정에 기름을 부어야만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열정 없이는 열심히 할 수 없는 걸까?

대도시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목표와 삶의 자세가 함께 있다는 점이다. 이기고 싶다면 이기면 그만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싶으면 적당히 살면 그만이다. 나는 이 둘중 하나를 고르지는 않기로 했다.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주인공 게임을 비웃으면서 '다 망했어'라고 떠들고 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다. 말고 행동이 다른 건 더 싫다. 난 글렀다고 자조하면서 갭투자를 기웃거리기도 싫고, 편한 일자리에 파묻혀 이번 생은 망했고 한국엔 답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매일 밤 술에 취하고 싶지도 않다. 경쟁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경쟁 없는 안락한 삶이 천국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도 열심히 사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 건 안다. 내 삶이 뭘 하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포르쉐의 신형 911 발표회 같이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 어때. 내 일을 잘 해냈을 때의 외적 보상과 내적 만족이 있다. 일이 궤도에 올랐을 때 잠깐씩 느껴지는 즐거움도 있다. 더 나아가 직업의 특성상 내 일을 잘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도 있다. 이거면 된 거 아닌가. 이 도시의 핫100에서 내가 몇위인지는 내게 큰 상관이 없다. 

"우리는 미쉐린의 별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때문에 찾았던 오스트리아 빈의 레스트랑 슈타이어렉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슈타이어렉은 미쉐린의 별 두 개를 받은 빈의 몇 안 되는 레스토랑 중 하나다. 크레이지 셰프 같은 면모는 전혀 없는 학자풍의 오너 셰프 하인츠 라이트바우어가 내 앞에서 조용하게 해준 말이 아직 기억난다. "랭킹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아요. 계속 인내하며 우리의 일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나갈 뿐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들이 따라옵니다. 남의 평가 같은 걸 계속 생각할 수는 없어요." 나는 더 물었다. 미쉐린의 별 두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지. "그것에 대해 항상 생각하지는 않는게 중요합니다. 별을 가진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내 부엌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내 팀과 내 파트너와 다음 단계로 할 일은 무엇인지, 이걸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 말을 듣자 내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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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일에 지치거나 내 노력이 무의미하다 싶을 때 종종 라이트바우어의 말을 펼쳐 본다. 미쉐린의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물론 훌륭하겠지만 그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아닐 것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나만의 과제가 가장 중요하다. 나 역시 점점 나아기는 레스토랑 같은 뭔가를 만들고 싶다. 그 마음으로 회사 일을 하고 종종 이런 원고를 만든다. 내게도 다른 삶은 없다. 이게 내 동기이고 내 게임이다. 내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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