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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시작하고 적어도 백일이 지나야 나에 대해서 내가 조금 알게 됩니다. 옛날에 누가 날더러 ‘고집이 세다’라고 했을 때는 ‘내가 왜 고집이 세? 난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지 고집이 센 사람이 아니야. 내가 고집이 세다면 당신은 또 어떻고? 이 세상에 나만큼 고집 안 센 사람이 누가 있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나더러 ‘당신 짜증이 많다’라고 하면 ‘내가 언제 짜증을 냈는데? 또 냈다 한들 나만 짜증내나? 당신은 짜증 안 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나의 성질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설령 인정한다 하더라도 ‘나만 그러나? 너는 안 그래? 사람이 다 그렇지!’ 이렇게 합리화하기가 쉬웠어요.
그런데 백 일 정도 수행을 하면 ‘아, 내가 성격이 좀 급하구나’, ‘내가 짜증이 좀 많구나’, ‘내가 고집이 좀 있구나’, ‘내가 집착을 좀 하는구나’ 이렇게 내 성격에 대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을 조금 알아차리게 됩니다. 인생의 변화는 사실을 사실로 알아차리는 때부터 시작됩니다.
인간 뇌의 정신작용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온갖 지식을 기억하고 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작용 중 가장 위대한 작용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차리는 겁니다. 내가 넘어졌을 때 넘어진 것을 알아차리면 일어날 수가 있고, 내가 가다가 가는 줄 알아차리면 멈출 수가 있고, 내가 멈춰 있을 때 멈춰 있음을 알아차리면 다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고집이 센 줄 알아차리면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고, 내가 화를 낼 때 화나는 줄 알아차리면 화를 멈출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 그 자체가 바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차림이 있으면 변화의 시작이 가능해 집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이 방대해도 아직 이런 알아차림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이키고 변화시키는 힘은 없습니다. 그런 변화를 가져오려면 늘 사람이 외부에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것이 바로 이 알아차림, 정념(正念)입니다. 바르게 알아차림이 이루어지려면 마음이 고요해야 합니다. 마음이 흥분되고 들뜬 상태에서는 자기 성질대로 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들뜨지 않고 고요한 상태,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마음이 뚜렷이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비록 과거에 지은 인연의 과보로 어떤 욕망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욕망의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리기 때문에 그 욕망에 끌려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기 운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즉 자기 까르마 혹은 자기 업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성질’이라고 말하는 것은 고쳐질 수 없기 때문에 ‘성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치고 싶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으니까 ‘아이고, 그게 그 사람의 성질이잖니?’라고 합니다. 자유로이 변화시킬 수가 없고 그냥 그렇게 나타나는 그것을 두고 우리는 ‘성질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그 성질을 고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운명 지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 성질을 고칠 수 있다면, 즉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운명 지어져 있지 않습니다. 변화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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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의 가장 핵심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방금 수행담에서 발표했듯이 아직 큰 변화는 오지 않았지만 괴로움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거기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알아차림이에요. 내가 불안할 때 ‘아, 내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구나’ 하고 불안함을 알아차리고, 내가 욕심낼 때 ‘내가 욕심내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고, 내가 집착할 때 ‘내가 집착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첫 발이 됩니다. 알아차린다고 저절로 벗어나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알아차림은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첫 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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