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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2016.

_sran 2016. 6. 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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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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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6월1일 개봉)의 각색은 대담하고 강력하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는 연쇄적인 반전들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선택하고도, 첫번째 반전을 제외하면 그 핵심적인 반전 설정들을 모두 버렸다. 후반부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어떤 인물은 사실상 거의 제거하다시피했다. 

그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반전을 만들어 넣으며 중반부 이후 원작과 완전히 다른 길로 내달리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핑거스미스'의 종반에는 "우리가 'xxx'을 속일 수도 있었어. 네가 내게 말만 해주었다면"이라는 대사가 살짝 나오는데, '아가씨'의 과감한 각색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원작과의 비교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지는 마시길. '박쥐'와 '올드보이'가 원작에 대해 그랬듯, 이건 다른 이야기니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히데코(김민희)는 후견인인 이모부(조진웅)의 엄격한 통제 아래 대저택에서 답답한 삶을 살아간다. 사기꾼 백작(하정우)은 상속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히데코에게 접근해 결혼하려고 한다. 백작은 결혼을 좀더 쉽게 성사시키려고 소매치기로 자란 고아 소녀 숙희(김태리)와 짜고 하녀로 위장해 히데코의 시중을 들게 한다. 그러나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가씨'는 한 장면의 의미를 다각도로 곱씹게 하는 스릴러이고, 기이하고도 신선한 유머감각이 지배하는 블랙 코미디이면서, 햇살 가득한 레즈비언 로맨스 드라마이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심플하고 명쾌하다.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게 하는 플롯에 적극 조응하는 김민희의 얼굴은 장면에 따라 서로 놀랍도록 달라서 나른하거나 신비로우며 순수하거나 강인하다. '올드보이'의 강혜정이나 '박쥐'의 김옥빈을 떠올리게 하는 김태리는 확신에 가득 찬 힘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러브 픽션'과 '비스티 보이스'의 사이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는 듯한 이 영화의 하정우는 특유의 능청맞고 장난스런 소년 같은 기운으로 납작할 수 있는 배역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내내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인물을 연기하던 조진웅은 극의 말미에서 두고두고 잊기 힘들 연기를 보여준다. 김해숙과 문소리 역시 이름값에 어울리는 연기로 화답한다. 

3부 구성인 이 영화에서 숙희가 이끌어가는 1부는 무척이나 빠른 서술과 많은 대사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같은 상황의 다른 의미가 히데코 시점에서 다시금 다뤄지는 2부를 염두에 둔 화법이다. 그렇게 히데코와 숙희 각각의 시선에서 서로 입체로 붙거나 맴돌듯 미끄러지는 이중나선형 플롯은 심리적 서스펜스와 유머를 곳곳에서 빚어낸다. (일례로 백작이 히데코를 본 순간, "매혹적"이라고 하려다가 말을 바꿔서 "탁, 탁월하게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하는 간단한 장면만 해도 다 보고 나면 다각도로 흥미롭다.) 때로는 날카롭게 돌출되어 있고 때로는 섬세하게 조탁된 대사들은 한국 관객들에게 의미와 소리가 서로 다르게 다가올 일본어와 그 둘이 하나로 인식될 한국어 사이를 넘나들면서 야릇하고도 솔깃한 순간을 끊임없이 자아낸다. 

(군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성애를 다뤘던)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을 떠올리게 하는 일본군 행렬 장면으로 시작하는 '아가씨'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도 관성적으로 민족주의를 채색하지 않는다. 대신 그 시대를 일종의 과도기나 혼종적인 시기로 보아내는데, 세트로 공들여 만든 극중 서재 풍경에서 이런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공간에는 조선인으로 태어났음에도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고 싶어 했던 극중 한 인물의 분열된 욕망이 담겨 있다. 

고전적이고 정교한 촬영과 화려하면서 섬세한 미술-의상-분장은 관객의 눈이 내내 호사를 누리게 하는 한편, 인물에게 덧씌워진 시공간의 굴레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두 인물이 환하게 나신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성애 장면들은 성별에 따라 명백히 대조적이다. 연미복과 나비 넥타이로 외피를 두른 극중 남성들의 욕망은 하릴없이 내연하거나 어이없게 빗나간다. 책을 통해 잘못 배운 그들의 뒤틀린 욕구는 점멸하는 조명 아래에서 서로 얽혀 기괴한 참극 속에서 좌초된다. 온전한 즐거움은 오로지 여성들의 것이다. 욕망 앞에서 정직한 히데코와 숙희는 계급을 넘어선 채 서로 동등한 육체로 환하게 섹스한다. 극중 베드신은 이토록 생생한 사랑과 감각 앞에서 감출 게 뭐가 있냐는 듯 하나같이 적나라하면서 시종 밝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골무로 치아를 갈아주는 장면일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박찬욱 작품세계의 여성성은 '아가씨'에 이르러 만개했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에 대한 파격적 각색의 핵심은 바로 '연대'에 놓여 있다. 결국 남성에 의해 제공된 틀과 계획을 거부한 채 둘만의 이야기 속으로 녹아 드는 두 여성은 섹스의 절정에서도 탈주의 정점에서도 굳게 손을 맞잡는다. 그들이 저택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남성이 폭력적으로 강제한 금지의 계율을 뜻하는 뱀 머리 형상을 부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장면을 위해서 원작 소설의 손가락 형상을 영화는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뱀 머리 형상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극이 끝날 무렵 두 연인은 징벌의 수단이었던 구슬을 쾌락의 도구로 바꾸며 떠나온 세계를 조롱한다. 

그들이 저택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이 영화가 햇빛과 달빛에서 실내등까지 빛을 세심하게 통제하고 변주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생의 활력으로 가득 찬 이 여성 성장영화는 빛이 금지된 저택을 벗어나 망망대해에서 두 연인에게 멋진 신세계를 선물한다. 그 라스트 신에서 바다 위 보름달은 처음으로 구름을 완전히 벗어난 채 밝을 빛을 내뿜는다. 그때 그 달은 바로 저택 안에서 히데코와 숙희의 방 사이 문에 그려져 있었던 둘만의 보름달이었다. 

그래, 맞다. '아가씨'는 모두가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종 킬킬대게 만드는 검은 유머와 흥미롭게 비틀린 회색빛 플롯 사이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는 붉은 감정은 내내 선연하다. 호쾌하다. 

★★★★


from.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magazine2.movie.daum.net/movie/3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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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에 본 아가씨는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객석에 불이 켜지고, '하아-'라며 숨을 쉬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래서 결국 동성애야?'라고 내뱉어 버리는 바람에(단어 자체보다 말투가 더 귀에 걸렸다) 당황했다.

특히 대형극장에서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기도 전에 객석불을 켜버리는게 참 싫다.

헤어질 준비도 되기전에 급하게 헤어지는 기분이랄까.

이번에도 여운을 길게 안지 못해 아쉬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좋았다. 

특히 요즘처럼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훅훅 마음을 파는 시기에 이런 연대영화가 나와주어 이동진평론가의 말처럼 호쾌하다. 



ps. '곡성'을 (여러 이유에서) '아 나는 못보겠구나'라고 포기했는데, 

이동진 평론가가 아가씨에는 별점 4, 곡성에는 별점 5를 주었다. 곡성을 볼 수 있을까. 다시한번 10분정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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