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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외도가 들통났을 때 보통 여자들은 두 타입으로 나뉩니다. 상대편 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내 남편에게 화를 내거나. 전자는 상대편 여자가 내 순진한 남편을 홀린 나쁜 여우라고 덮어씌웁니다. 왜? 남편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물고를 터주기 위해서죠. 반면, 후자는 상대편 여자는 알 바 아니고 진짜 문제는 남편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바람펴서 분노하는 수준을 넘어, 남자의 근본적인 ‘자질’을 묻고 있는 거지요.
‘이혼할 생각은 없지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건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외도가 발각되었을 때 대개 이러죠. 물론 결혼을 해도 사람 마음까진 잡아둘 수는 없습니다. 들통나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 죄책감 때문에 아내에게 더 잘한다,고 하면 할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들통나면 어쩔 거냐고요. 그래도 이별할 생각이 없다,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신 이런 일 없다,고 해도 누가 보장해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아내가 지금 상처받은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평생 그의심 섞인 불안감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람은 아무나 피는 게 아닙니다. 아내와 이혼할 용기와 체력이 없다면 바람 같은 거 피덜 말아야 합니다. 이혼을 당해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만 해야 합니다. 평온한 가정을 깨고 싶지 않다, 단지 자극이 필요했다, 이건 그냥 ‘바람’이니까 괜찮다고 하는 것은 너무 제멋대로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을 폈다는 그 사실이 나쁘다기보다(그건 때로는 불가항력), ‘다 놓치고 싶지 않다, 어쩔래배째’하는 그 뻔뻔한 멘탈리티가 역겨운 것입니다
다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여자랑은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바람, 아니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내가정이 깨져도 상관없다, 차라리 이 참에 들통나서 속시원하다, 정도의 각오도 없이 바람 피는 것은 도리어 아내를 더 깊이 상처 입히는 거니깐요. 올인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 여자,보다도 못한 너절한 존재가 돼버린 거잖아요?
결혼하던 그 날, 아무도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마 다른 사람을 좋아하랴 싶었는데 좋아하게 된 것처럼, 이혼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기혼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혼이 본능적으로 두려워집니다. 쉬운 일이 아니니깐요. 하지만 이 결혼생활이 잘못됨을 알면서도 계속 해 나가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진심 어린 반성과 용서, 희망 하나 없이, 결혼이 뭐 원래 이런 거지, 남자한테 뭘 바래, 식의 체념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갈 바에야 이혼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양육비 내기 싫고, 아이 못 보내는 게 싫어 애정 없는 아내와 사는 남편, 생계 걱정이 싫고, 이혼녀의 낙인이 싫어 하는 수 없이 참고 사는 아내, 이거야 원 미지의 불행을 피하려고 예측 가능한 불행을 평생 끌어안고 살아가겠다고 미리 손 든 거나 다름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가죽을 때 다 되가지고 ‘당신한테 진 빚이 많네. 고마워’라며 쭈글쭈글 손을 잡는 노부부,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습니다. 끝까지합리화하기는.
아마 지금 당신은 그 어떤 행동도 못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여러 뜨거운(사랑, 질투, 분노 등) 감정이 남아있으니까. 한참은 더 울고 싸우고 애원하고 화해하고를 반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을 확 비우는 시점이 오겠지요. 기든아니든 그 때가 최종결정을 내리는 타이밍.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때가 오기 전까지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그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만들어놓는 것 뿐입니다. 결혼은 종신보험이 아닙니다. 정신적, 경제적으로도 독립되어 있고,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헤어지든 말든 내 인생의 결정권을 내가 가지게 됩니다. <바람 피는 것은 절대용서할 수 없다>와 <이혼은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이 한 입에서 같이 나오는 동안에는 본인 스스로도 헷갈려서 어쩌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지요. 사람들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공지영 작가를 얘기할 때 세 번 이혼을 ‘했다’라고 하던데 전 ‘했다’가아닌 ‘할 수 있었다’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고 싶은 기분이랄까.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