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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된다. 
... 나는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고 말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 지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뭐가 진짜 이기는 거고 지는 건지조차 구분이 어려워진다. 
... 이겨본 사람만이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요컨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자는 것이다. 


:: 관계가 이어졌다가 끊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명확한 건 오직 시작과 끝뿐이다. 나머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다. 
거기서 선명한 원인 한 가지를 찾아내겠다고 애쓰는 건 이미 먹고 있던 국수 그릇에서 처음 삼킨 면과 마지막에 삼킬 면의 시작과 끝을 찾아 이어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재물을 쌓아 올려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수해내는, 혹은 재물 그 자체를 위한 인프라로써 기능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지리멸렬한 평생의 과정이 가족의 본령이 아니다. 내부의 갈등을 가족이라는 허명으로 덮어 일방적으로 무마하려 하지 않고 해체되었더라도 위기가 닥쳤을 때는 아무런 조건 없이 언제든 다시 찾아와 옆을 지켜주는 게 가족이다. 그게 반평생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삶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 마땅한 의리다. 의리 말이다. 아, 한국 사회에서 의리라는 단어는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저평가되어 있는가. 
... 나는 가족이 혈연 이전에 사연으로 유지되는 운명 공동체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나이가 들수록 크고 격정적이며 값비싼 것보다 이와 같은 경험들이 쌓였을 때 방향감각이 생기고 등이 곧게 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연애였다.
... 그렇게 되면 헤어질 때 너무 고되다. 흡사 아버지에게 "등록금을 줄 수 없다"는 말을 24시간 동안 듣고 있는 것 같은 심정이 된다. 
...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난 뒤 나는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았다. 
...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그럴싸한 말장난이다. 
... 머리가 아닌 몸으로 무언가를 깨닫는 데는 늘 큰 비용이 든다. 


:: 오늘도 나는 나와 다투고, 또다시 친구가 되기를 반복한다. 지치는 노릇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될 일이다. 


::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뜨겁게 살지 않는다. 
... 뜨거움은 삶을 소란스럽게 만들 뿐 정작 단 한번도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게 한번 살아봤으니,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전혀 다르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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