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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책

연애와 술. 김괜저.

_sran 2020. 12. 13. 21:23



:: ...선생님이 가져온 노래는 R.E.M.의 <나잇스위밍>(Nightwsimming)이었다. 

:: 지금은 그 어떤 특수한 재능을 개발하든 간에, 그걸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최소 12,000명 정도는 있다는 현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 또래 압력이라는 말도 이제 낡은 것 같고, 전인류 압력이라고 해두자. 엄마는 이런 날 알기에, 내가 뭔가를 새로 하기로 했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그걸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는 하지 마."

:: 걷는 것이 좋다. 연애할 때 걷는 것은 더욱 좋다. 연애가 잘 안 될 때에 혼자 걷는 것은 더더욱 좋다. 어디로든 걷고만 싶다. 어디든 좋다. 
... 어디론가 가는 중에는 마음이 제자리를 찾고 몸이 편해진다. 이예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뭐라도 달라질 것이다. 이미 가본 곳으로 돌아간다면 그간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겠 될 것이다. 일단 가고 보는 것은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처방이다. 
 어디로 가고 있지 않을 때에는 언짢다. 관계도 그렇다. 이 관계가 깊어지고 있는지,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고, 증거가 없다면 그렇게 상상하고 싶다. 

:: ... 일에 전념하기 위해 비싼 월세를 무릅쓰고 도심으로 나온 만큼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방이 침대와 책상 외 그 어떤 가구도 고려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기 때문에 성질에 맞지 않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 난데없이 석호가 들어왔다. 
 석호와 나는 쉽지 않은 사이였다. 그는 손 대면 데일 듯 불같은 성격이었고 그가 타오를수록 나는 자존심으로 일렁이는 시커먼 무링 되었다. 그는 금요일 저녁이면 내 오피스텔로 왔다가 일요일 오후에 떠나곤 했는데 매 주말이 아슬했다. 나는 애인과 한 공간에 이렇게 오래 같이 지내보는 것이 처음이어서, 처음에는 손님처럼 대접해보기도 하고 내 집 규칙을 들이밀며 깐깐하게 해보기도 했다.
... 갑자기 느려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우리 사이가 다시 좋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나는 옆에 앉은 석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위스키 메뉴처럼 펼쳐놓고 고르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우리가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우리가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장면에 웃을 때 나는 살 것 같다. 네가 내 얘기를 듣고 웃음을 터트릴 때 나는 살 것 같다. 이제는 세상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네가 날 보고 웃으면 그걸로 나는 살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나를 보고 웃지 않으면 아마도 나는 죽을 것 같다. 그런 말들 중에 고르고 고르다 결국 말했다. "이 술잔 진짜 예쁘지 않아?" 석호는 그런 날 보며 말했다. "재미없게 넌 이순간에 무슨 잔 얘기를 하니......."

:: ... 일희일비하지 맙시다, 10분 쉬고 옵시다, 과잉대응하지 맙시다, 즉각처리하지 맙시다, 사람 말고 일을 봅시다 같은 말을 달고 산다. 일터에서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떼어놓고 일하기를 원하고 일하는 나에게 감정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감정 때문에 없을 일도 생기고, 작을 일이 커지고, 될 일을 그르친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 강박을 너무 많이 갖고 살면 안 피곤하냐고들 한다. 실제로는 숨쉬듯 하는 고민이라 피곤한지도 잘 모르겠다. 어떨 때에는 강박을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어떨 때에는 내 인생의 운전대를 으스러지듯 꽉 붙잡지 않고 어떻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대로 해보려는 노력이 덧없는 건 아니니까. 

:: 다들 똑같았구나. 나는 유별났지만, 나만 유별나지도 않았구나. 우리 모두가 옆사람보다는 유별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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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술. 김괜저. 


헨리에 대한 스무가지 부분이 좋았다. 
시와산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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