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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까지 였나보지 뭐.


:: 술에 취한다는 건 결국 그냥 좀 멍청해지는 것이다. ... 내게 술이란 즐겁고도 해로운 취미다. 즐거움이 해로움보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시는 것이고 말이다.


:: 집착을 버리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실 무언가를 많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아무튼 행복한 일 아닌가. 내 경우에는 그런 대상이 너무 적어서 좀 심심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나 자신의 어딘가가 조금 고장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 "기분탓이야." 이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기분'을 좀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나는 기분만큼 믿을 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살피는 일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 나는 아직까지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일단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오랫동안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다. 사실 나는 같은 이유로 반려동물도 들이지 않는다. ... 한마디로, 나는 아버지로서의 의무 때문에 나의 자유를 양보할 생각이 아직은 없는 것이다. 


::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돈을 아끼고 말고와도 좀 다른 문제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다. 


:: 언젠가 "넌 정말 감성적이야.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라는 말을 듣는 날이 내게도 올까?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그 말은 그런 내가 좋다는 말일까 싫다는 말일까? 물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척 궁금해진다. 


::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니 좋겠다"는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있다. 부러워서 하는 말이니 으쓱할 만도 한데, 그때마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나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닌데'라는 마음이었달까. 자유롭다는 것은 곧 막연하다는 뜻이고, 막연한 삶은 종종 외롭다. 


:: 행복 앞에 뾰족한 수는 없다. 그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돈이 많든 적든 재능이 많든 적든 인기가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애인이 있든 없든 집이 있든 없든 키가 작든 크든 그 무엇을 가졌든 못 가졌든 행복이란 누구에게나 대략 비슷하게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얘기다. 물론 각자 무엇을 가졌는가에 따라 사회적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은 달라진다. 거기에 있어서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행복은 다른 문제다. 그 어떤 사회적 성공도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그 성공을 손에 넣는 순간 자신이 그걸 얼마나 절실히 원했었는지 잊어버린다. 혹은 그 성공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불행을 맞이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눈앞에 놓인 불행을 어떻게든 헤치고 나름의 행복에 닿고자 막연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이게 여태까지의 삶이 내게 가르쳐준 바다. 물론 앞으로 이 생각을 뒤집어줄 사람이나 사건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적이 없다. 


:: 완벽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행복과 불행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위 위에서 몇 분쯤 서성거리다 내려와 다시 옷을 입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그 경험이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을 법도 한데, 충만함이 너무 크다보니 오히려 미련이 생기지 않았다. 오늘의 행복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 혼자 여행할 때는 밤을 조심해야 한다. 신변에 위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마음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 대단한 항해를 계획하지 않아도 파도는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파도를 맞이하고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푸른 바다 위를 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한, 모든 것에는 끝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미 수 많은 끝을 경험했다. ... 물론 옛 연인이나 친구들과는 어쩌면 재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시절의 그 관계, 그 마음, 그 촉감이 영영 끝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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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의 죽음도 일몰을 바라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유학길에 오르는 친구를 배웅하는 일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은 분도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조심스레 되묻고 싶다. 혹시 일몰을 바라보고 연인과 헤어지고 친구를 배웅하는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죽음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그것은 결국 삶이 가벼운가 무거운가와 똑같은 질문일 것이다. 삶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세상 전체로 보면 한 사람의 삶은 별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우주로 나가 지구를 바라본다면, 나의 삶은 (보이기라도 한다면 말이지만) 도마뱀의 삶보다 딱히 더 무거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한번 철썩이는 파도와도 경중을 가리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세상 전체의 모습은 아마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반면 살아가는 당사자 혹은 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삶은 나머지 세상을 전부 합한 것보다도 무거울 수 있다. 나는 일거수일투족에도 수많은 고민을 담는다. 라면 하나 먹는 것을 가지고 글까지 쓸 정도다. 그리고 늘 어떻게든 좀 잘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내가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나를 사랑하는 몇몇 사람의 가슴은 무너져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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