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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에 앉아있다. 이제야 한숨을 돌리는 기분이다. 하필이면 작업 몇 개가 모여 있는 정신없는 주였다. 거기에 선배가 제안한 전시회도 예정돼 있었는데, 하필이면 외주제작건의 해외출장 일정이 전시 일정과 겹쳐버렸다. 떠나기 전 그나마 겹치지 않은 하루 동안 전시장을 지키러 오면서, 아직 다 마무리 짓지 못한 작업 거리들을 싸들고 앉았다. 그 와중에 연락이 왔다. 대법원 해고무효 최종 승소 판결.


그러니 이 하루 동안 머릿속이 얌전하기란 아주 글러버린 일이었다. 작업은 빨리 해서 보내야 하는데, 전시회장에는 아침부터 감사하게 손님들이 찾아와 주고, 전화기는 대법원 판결 소식으로 계속 울린다. 당장 내일 스웨덴으로 떠날 준비도 전혀 못해놨는데, 어찌어찌 다녀오고 나면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까마득할 지경이었다. 한 해 반쯤 전 해고 소식을 들을 때는 그래도 내내 술렁거린 분위기 덕에 천천히 준비할 수 있었는데, 그 해고가 말도 안 되는 거였다는 판결 소식은 이렇게나 갑자기 찾아오는구나.


변호사의 말을 들으니 심리불속행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상급법원으로 상고된 사건 중에서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새로 심리도 안 하고 그냥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 심리를 거쳐 재판 결과를 선고할 때는 원래 일정기간 여유를 두고 당사자에게 미리 알려주는데, 심리불속행 기각은 사실상 선고도 아니라 결정이 되는대로 기각사유만 간단하게 적어서 당사자에게 보내준다고 한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자꾸 난리를 쳐, 그만해.’ 라고 뚱한 표정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결국 이렇게 끝날 일이었다. 해고무효 소송이 대법원 결과까지 나오는데 1년 반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보통 한 번의 선고까지 몇 차례의 재판으로 심리를 다투는 것과는 달리, 내 해고무효 소송은 한 번의 공판만으로 바로 선고가 났다. 고등법원 첫 공판이 열리던 재판장에서 판사가 바로 선고 기일을 잡으려하자, 자료를 더 제출하겠다며 추가 심리를 요구하던 회사 측 변호사가 떠오른다. 물론 단번에 기각되었다. 그렇잖아도 심드렁한 분위기의 재판장이었다. 회사 측 변호사가 내 해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억지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근거들을 동원하는 모습은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 변호사가 얼마나 진심을 담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내게는 억지를 부리는 그 모습이 변호사 개인보다는, MBC 경영진의 모습으로 보였을 따름이다.


점심 쯤 되자 판결 관련된 연락들도 어느 정도 잦아들고, 오전부터 북적였던 전시장도 살짝 한적해졌다. 때맞춰 조합 집행부와 해직 선배들이 찾아왔다. 원래 전시장에 오기로 했지만, 오전에 갑자기 들려온 승소 소식의 반가움이 더해진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복직 전까지 정리해야할 일들에 대해 의논도 해야 하던 참이었다. 간단한 축하인사가 오가고, 내 질문을 들어주려 선배들이 내 앞에 마주섰다.


아무 생각 없이 걱정거리들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목이 멨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 티를 안내려 겨우 말들을 뱉어놓고, 목 아래로 올라오는 무언가를 찬찬히 추슬렀다. 다행히 눈치를 못 챘는지 선배들은 예의 그 온화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있었다. 설명해주는 목소리 위로 지난 1년 반 동안 보았던, 아니 더 거슬러 2012년 싸움의 현장에서부터 보았던 선배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앞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든, 항상 마음을 다해 존중하는 분들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나이나 경력이나 까마득히 차이나는 나 같은 후배에게도 늘 같은 눈높이로 대해준다는 느낌이 아늑했다. 굳이 자신이 지지 않아도 되는 책임을 지기 위해, 송두리째 달라진 인생을 끌어안고도 늘 유쾌하게 웃을 줄 아는 분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잘못된 것 앞에서는 잘못됐다 말하는 눈빛이 형형했다. 해직기간 동안 이런저런 일로 만나고 나면,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넉넉해지는 좋은 선배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었다.


살면서 좋은 어른, 어른다운 어른을 만난다는 것은 더 없는 복이다. 내가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 어른들과 이렇게 만나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까. 무리수를 동원해가며 나를 해고해준 회사의 선물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회사는 어쩜 이런 사람들만 기똥차게 골라서 괴롭히고 있는 걸까. 여러모로 뛰어난 안목이다. 정말이지 이상한 나라다. 울컥함의 이유는, 지난 1년 반 동안 이 선배들이 얼마나 좋은 어른인지 느꼈던 게 생각나서였던 걸까. 혹은 이들은 아직 불안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승소 판결을 들고 서있는 순간이 괜히 슬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대법원의 판결이 끝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내 미래 역시 여전히 불안하다는 것을 안다. 내 판결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우리는 그래도 네가 싫다’며 원색적인 표현들로 입장을 내던 경영진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상호 선배가 법정 싸움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떠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 치졸한 괴롭힘이 내게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그리 길지 않았던 그 해고 기간 동안 예능국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모두가 기억하는 좋은 MBC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동안, 많은 이들이 떠났고 모르는 얼굴들이 늘었다. 어쩌다 한 번씩 PD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도 이제는 내가 기억하던 그 곳과는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사실만 씁쓸하게 느낄 때가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싸울 것은 돌아가서 싸워야 한다. 버틸 것은 버텨야 한다. 새로운 고민은 그때 가서 다시 하면 되겠지. 다만 다짐하는 한 가지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엇을 겪게 되든 나 역시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단지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넉넉해지는 선배들은 그 자체로 큰 힘이었으니까. 마음이 퍽퍽해지려 할 때마다, 울컥할 만큼 따뜻했던 그 좋은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려야겠다. 그리고 부디, 머지않은 미래에 일터에서도 웃으며 그 얼굴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길.



from. 권성민 PD의 끼적끼적. 2016.05.16. 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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