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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한 젊은 편집자가 세상을 떠났다. 근무 중에 사고사를 당한 것이다. 편집자라는 직업 특성상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다니. 이렇게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는데도, 어쩐 일인지 출판 동네는 조용하다. 


그는 참으로 책을 좋아하고, 책 만드는 일을 아주 잘하고 좋아하는, 그야말로 타고난 편집자였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은 것은 서점이었다. 그가 속한 출판사에서 광주에 서점을 오픈하기로 하면서 그 생소한 업무를 맡게 되었고, 오롯이 혼자서 몇 달 동안 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점 오픈이 다가오자 젊은 미혼 여성의 몸으로 일주일 동안 아예 광주에서 숙식을 하며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 오픈일을 이틀 앞두고 매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는 참변을 당한 것이다. 


놀랍게도 당시 현장에는 남자 직원 하나 없이 여성 편집자들만 있었다고 한다. 또 기막히게도 머리를 다친 위급한 상황에서 병원을 세 군데나 옮겨 다녔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고 4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수술을 받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비정상적인 악재들이 겹쳐 아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책 만드는 편집자가 자신의 본업이 아닌, 서점 오픈 준비를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우연이라고, 운이 나빴다고, 일이 잘못되려다 보니 그렇게 꼬이기도 한다고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다. 납득도 되지 않고, 너무 비현실적이라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요즘 출판계가 많이 어렵다. 출판사들은 구조조정으로 허리띠를 졸라맸고, 남은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편집자들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휴일에 도서전에서 책판매원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서점 론칭 업무까지 맡아서 한다. 편집자들은 책에 대한 애정으로 궂은일도 마다 않지만, 이런 관행들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책에 대한 애정을 볼모로 부당노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출판계에 만연한 것은 아닐까. 이번 사고도 한 사람이 맡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혼자 떠맡아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이 업무를 좋아하지 않았다. 서점 일 하면서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고, 이 일이 끝나면 다시 편집자로 돌아와 책 많이 읽고 싶다고 했다니, 가슴이 미어진다. 나 역시 이 잘못된 관행의 방관자로서 책임을 느낀다. 이 잔인한 사월에, 며칠 전 세찬 빗속에서 49재를 치렀다. 이제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데, 그의 억울한 죽음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입 닫고, 눈감고, 침묵하고 있는 출판계가 야속하기만 하다. 작가로서, 함께 출판밥을 먹어온 선배로서 부끄럽고 죄스럽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출판사, 잘못된 관행에 길들여진 출판계 인사들의 무신경이 아까운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혹시 힘겹게 아물어가는 유족의 상처를 헤집게 될까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책을 사랑한 죄로 온 힘을 다해 책을 만들었던 그의 명예가 온전히 지켜지기를, 나아가 이제까지의 잘못된 관행에서 한 발이라도 벗어나 다시는 이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바란다.


꽃이 떨어지듯, 속절없이 생을 마감한 그의 명복을 빈다. 



from. 강무홍. 한겨레.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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