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게재한 ‘2009년 외국영화 베스트 10’에 이어, ‘2009년 한국영화 베스트 10’을 올립니다. 이 리스트 역시 2008년 12월19일부터 2009년 12월10일까지 한국에서 정식으로 극장개봉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영화제에서만 상영된 작품은 제외했습니다.

이 순위는 영화평을 직업적으로 쓰고 있는 저의 미학적인 판단 기준과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결과입니다.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리스트인만큼 보시는 분들도 각자의 올 한 해 베스트 영화 목록과 비교해가면서 즐기는 마음으로 가볍게 대해주시길 바랍니다.

10위. 호우시절

허진호 멜로의 가장 맑은 내(川)는 ‘8월의 크리스마스’가 냈고, 가장 높은 산은 ‘봄날은 간다’가 올렸으며, 가장 깊은 골은 ‘행복’이 팠습니다. 그리고 ‘호우시절’은 가장 가벼운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시작해 ‘행복’까지 4편을 내놓는 동안 점점 어두워졌던 허진호 감독의 작품세계는 이 깔끔하고 정갈한 소품을 통해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이 영화는 쓰촨성 대지진을 모티브로 삼아 중국 청두에서 촬영되어야 하는 기획의 제약 때문에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머러스하고 밝은 허진호 감독의 이 새로운 러브 스토리는 예쁜 공간 속에서 멋진 배우들이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광경을 보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새삼 일깨워줍니다. ‘호우시절’은 모든 사랑이 결국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일러줍니다. 그리고 허진호 감독은 인간은 결국 그가 사랑하는 만큼만 선할 뿐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하는 듯 합니다.

9위. 불신지옥

충무로 공포영화에 대해 끝내 불신할 수 없는 것은 이따금 ‘불신지옥’ 같은 작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본기와 상상력이 모두 좋은 이용주 감독의 이 데뷔작은 계절의 관성에만 기댄 채 앙상한 아이디어와 빈약한 연출력으로 고만고만하게 찍어내는 여타 국내 호러와 또렷하게 구별됩니다.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공포와 매혹을 실감나게 담아낸 이 작품에는 한 번 보면 오래도록 잊지 못할 만큼 인상적이고 섬뜩한 이미지들이 선도(鮮度)와 강도(强度)를 겸비한 채 담겨 있습니다. 남상미씨를 위시한 배우들 역시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좋습니다. 아울러, 할리우드 호러가 숲 속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저밀도 공간의 공포를 즐겨 다루는 것과 달리 ‘불신지옥’은 한국식 공포영화에 아파트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장소인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빚어내는 참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8위. 나무 없는 산

김소영 감독은 전작 ‘방황의 날들’로부터 두어 걸음 앞으로 성큼 나아갔습니다. ‘나무 없는 산’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형식에서의 성취입니다. 여기서 카메라는 버려진 아이들에게로 다가가서 그저 지켜봅니다.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대신 묵묵히 기다리기만 하는 듯한 그 카메라는 아이들의 텅 빈 얼굴에 비춰진 세상을 어느덧 담고, 그 눈동자 위에서 멈출 듯 천천히 흘러가는 유년기의 시간을 끝내 담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진공 같은 세상에서 느리고 긴 시간을 견뎌내는 어린것들. 이 영화가 벌이는 것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고, 시간을 담아내려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모든 훌륭한 영화가 그런 작업을 합니다.) 채 90분이 되지 않는 러닝타임을 가진 이 짧고 고요한 영화는 단순하고 건조해서 오래가는 감동을 품고 있습니다.

7위. 낮술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낮술’의 제작비는 1천만원. 조명 설비를 할 여건이 되지 못해서 주로 낮에만 촬영해야 했던 이 독립영화에서 노영석 감독은 처음 장편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포기해도 되는 것과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을 정확히 구분했습니다. 튼튼한 영화 체력과 이야기를 흥미롭게 계속 이어갈 줄 아는 세헤라자데의 피를 함께 가진 그는 연출 촬영 편집 각본 미술 음악을 홀로 도맡아가면서 자신의 재능과 의지를 동시에 증명했습니다. 넘쳐나는 유머 감각은 재치를 과시하는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삶의 빈곳을 예리하게 바라보는 눈에서 도출된 것이기에 질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비루한 남자들과 수상한 여자들은 정말이지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작품은 술로 인해 생기는 그 모든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런 해프닝들을 샅샅이 보여줌으로써, 영원히 낮술을 마시고 싶지 않게 만드는 금주영화로서의 계몽적 효과까지 발휘합니다. ^^)

6위. 파주

박찬옥 감독의 영화에서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좀더 중요하고, 입밖으로 내뱉은 말보다 심장으로 삼킨 말이 더 많은 것을 전합니다. 그리고 ‘파주’를 뒤덮는 푸르스름한 안개는 드러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그 모든 생(生)의 기척들을 품은 채 서서히 기화됩니다. 여기서 박찬옥 감독의 입체적인 각본과 예민한 연출은 김우형 카메라감독의 격정과 품위를 겸비한 촬영을 통해 멋지게 비상했습니다. 주연을 맡은 서우씨의 기묘한 표정들은 배우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까지도 관객을 강력히 빨아들입니다. ‘파주’라는 몽환적인 영화 시(詩)는 좋은 운문이 지니고 있는 긴 여운을 갖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미스터리와 사랑이라는 히스테리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여운에 실려 관객의 눈과 귀에 잔상과 이명으로 끊임없이 부유하고 점멸합니다.

5위. 여행자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어떤 작품도 이 영화만큼 마음을 아프게 하진 않았습니다. 극중에서 아이(들)가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단 한 번의 예외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같은 노래가 반복되는 설정이라 예상이 되는 장면들임에도 그랬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나무 없는 산’이 형식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둬들였다면, ‘여행자’는 정서적인 면모에서 가장 깊은 성취를 했습니다. 모든 자전적 작품들에는 어떤 절실함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지만, 우니 르콩트 감독의 어린날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화는 특히 그렇습니다. 처연하고 진진한 이야기를 절제된 형식으로 들려주는 ‘여행자’는 눈에 밟히고 가슴에 쌓이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에서 채 열살이 되지 않은 특별한 배우 김새론양이 삶이란 결국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아프게 전할 때마다, 관객은 연민과 슬픔으로 온통 흔들립니다.

4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지 13년. 홍상수 감독은 여전히 가장 탁월한 한국 영화 감독들 중 하나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통념이나 허위의식과 싸우는 그의 방식이 점점 치열해지면서도 동시에 여유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스타일이나 인물이 내면을 드러내는 방법의 변화에서 감지되듯, 홍상수 감독은 대상을 향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의 가장 유머러스한 영화일 것입니다. 제천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전반부도 좋지만, 제주에서 펼쳐지는 후반부는 특히 훌륭합니다. 아마도 김태우씨는 홍상수의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배우일 것입니다. 그리고 고현정씨는 그 세계에 이제껏 가장 큰 자극을 가한 연기자일 겁니다. 점점 넓어지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시선이 개봉을 기다리는 10번째 작품 ‘하하하’에선 무엇을 담아낼지 자못 궁금합니다.

3위. 똥파리

한 순간도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꼬고 볼 수 없는 영화가 있습니다. 양익준 감독의 데뷔작‘똥파리’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독기와 결기, 악과 깡으로만 빚어진 듯한 주인공이 핏덩어리가 곳곳에 엉겨붙은 세상에서 내내 절규하는 이 난폭한 영화는 실로 가공할 화력을 지녔습니다. 이 작품이 그토록 강렬한 파토스를 지니게 된 것은 그 안에 양익준 감독의 훌륭한 영화적 재능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간 자체가 농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똥파리’는 인생에 단 한 번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담겨 있는 작품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직접 주연까지 맡아 이 영화의 심장이면서 얼굴이 된 양익준 감독 자신을 비롯, 김꽃비 정만식 이환씨 등 여기 등장하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 역시 더없이 인상적입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올해 독립영화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리고 그 최상의 수확은 ‘워낭소리’가 아니라 ‘똥파리’입니다.

2위. 마더

이 음울하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는 기어이 마음의 현 몇 개를 끊어내고서야 어두운 우물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져갑니다. 횃불 대신 단검을 들고온 봉준호 감독은 정확히 비수를 휘둘러 인간이라는 심연으로 통하는 봉인을 찢었습니다. 치밀한 복선, 능란한 서스펜스, 강력한 반전을 가진 이 탁월한 심리 스릴러는 장르 언어의 용례를 훤히 숙달한 사람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홍경표 카메라감독의 촬영이 특별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마더’라는 영화가 독무로 시작해서 군무로 끝나는 제의를 치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모성이 처하게 되는 딜레마를 소름끼치는 생생함으로 살려낸 작품인 동시에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길을 잃은 한국인들의 삶 자체를 위무하는 거대한 굿판 같은 영화니까요. 그 굿판에서 신들린 듯 춤을 출 수 있는 배우로 김혜자씨 외에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는 어렵습니다. 현재까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어둡고 독한 작품이 된 ‘마더’가 드러내는 것은 봉준호 감독의 진화입니다. 여기엔 그의 예술적 야심이 도달한 정점 하나가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떠난 그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올해의 라스트신입니다.

1위. 박쥐

그렇습니다. 제게 올 최고의 한국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였습니다. 지난 4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그 압도적인 느낌은 며칠 뒤 다시 볼 때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든 스타일이든, 이처럼 끝까지 가는 작품을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현이 죽은 태주를 살려내는 대목은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모든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박쥐’의 독창성과 그 불가해한 매력은 영화적 체험의 강렬한 극단으로 몰고갑니다. 어느 방향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동시에 어떤 쪽에서도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이 영화는 기이한 입체성과 불균질한 복합성을 지닌 매혹적 다면체입니다. 여기엔 피의 에로스가 있는가 하면 물의 타나토스도 있습니다. 비틀어 착종한 내러티브가 있고, 도착(倒錯)된 상징이 있으며, 기괴한 유머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서 장대한 피빛으로 끓어넘치는 바다는 그 모든 권태와 욕망, 희생과 파멸의 드라마까지 집어 삼킵니다. 연기의 측면에서도 ‘박쥐’는 최고입니다. 안으로 함몰되고 또 함몰되어 스스로의 가슴 속에 블랙홀을 가지게 된 텅 빈 얼굴의 괴물을 송강호씨처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겁니다. 인간식물의 권태와 육식동물의 본능을 함께 살려낸 김옥빈씨를 비롯, 김해숙 신하균 박인환 송영창 오달수씨의 연기도 특별히 기록해둘 만합니다. 아마도 ‘박쥐’는 올 한 해 가장 많은 논란을 빚었던 영화일 것입니다. 일반관객들뿐만 아니라 평단까지도 양극단의 찬-반론으로 확연히 갈렸으니까요. 그러니 이제 제가 기다리는 것은 이 영화의 가치를 입증해줄 세월입니다.

 

== from. 이동진닷컴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저는 해마다 12월이 되면 그 해의 개봉작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외국영화와 한국영화로 나눠서 뽑아왔습니다. 창작품에 순위를 매겨서 줄을 세우는 것에는 어느 정도 무리가 따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리를 하면, 1년간 개봉한 수백편의 작품들 중에서 유달리 빛났던 뛰어난 영화들에 대해 간명하고도 흥미로운 자료가 될 수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에 ‘2009년 외국영화 베스트 10’을 먼저 올립니다. (‘2009년 한국영화 베스트 10’은 며칠 내로 띄우겠습니다.) 2008년 12월19일부터 2009년 12월10일까지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영화제에서만 상영된 작품은 제외했습니다. 이 리스트는 영화평 쓰는 일을 하는 저의 미학적인 판단 기준과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순위입니다.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리스트인만큼 보시는 분들도 각자의 올 한 해 베스트 영화 목록과 비교해가면서 즐기는 마음으로 가볍게 대해주시길 바랍니다.

 

10위. 디스트릭트 9
사실 ‘디스트릭트 9’은 단점이 꽤 있습니다. 플롯은 편의적이고 구조는 유기적이지 못합니다. 주인공의 사투를 다루는 중반부는 그저 평범한 액션의 화술과 비주얼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창의성과 패기는 실로 대단합니다. 인종주의의 해악에서 무기산업의 탐욕까지를 신랄하게 조롱하는 정치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오락영화로서도 제 몫을 다하려고 합니다. 감독은 묵은 장르인 SF를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에 담음으로써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올해 SF는 두 명의 주목할만한 신인을 내놓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만 골라야 한다면, 잠시 고민 끝에 ‘더 문’의 던컨 존스를 제쳐두고 올해의 신인감독으로 ‘디스트릭트 9’의 닐 블롬캠프를 선택하겠습니다. 블롬캠프는 차기작에서 ‘디스트릭트 9’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9위. 로나의 침묵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는 일련의 윤리적인 영화들을 통해 현대 영화에서 가장 엄숙한 순간들을 빚어왔습니다. 형용사와 부사를 제거하고 명사와 동사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듯한 이들의 건조한 리얼리즘은 풍요의 그늘에서 고통을 겪는 인물들을 근심 어린 시선으로 끝까지 응시합니다. ‘로나의 침묵’이 다르덴 형제의 가장 뛰어난 작품인 것은 결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신작은 분명 올 한 해 가장 깊은 작품들 중의 하나입니다. 극중에서 주인공 로나를 진정한 인간으로 만든 것은 꿈이 아니라 연민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연민보다 고귀한 감정은 없다는 사실을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8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부터 ‘뜨거운 오후’와 ‘네트워크’ 그리고 ‘허공에의 질주’까지, 지난 50년간 시드니 루멧은 드라마를 가장 잘 다뤄내는 미국 감독이었습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 이르러 어느덧 83살이 되었지만, 루멧의 감각은 전혀 녹슬지 않았습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실패로 끝나는 범죄 현장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도입부부터 보는 이를 사로잡은 후, 그 범죄 계획의 배후에 담긴 이야기들을 끝까지 동력을 잃지 않는 서스펜스에 담아 종횡무진 펼쳐냅니다. 그리고 부자(父子)와 형제간의 애증을 생생히 그려낸 끝에 도달하는 그리스 비극적인 결말은 가족주의를 압사시키면서 섬뜩한 충격을 안깁니다. 관객의 멱살을 움켜쥔 뒤 단 한 번도 놓지 않는 이 작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할리우드가 구사하는 최상급의 드라마투르기(dramaturgy)입니다.

7위. 그랜 토리노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감독입니다. ‘미스틱 리버’ ‘밀리언달러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로 이어지는 이스트우드의 걸작 계보에 당당히 들어갈 ‘그랜 토리노’는 어느덧 여든을 눈앞에 둔 그가 미리 당겨서 쓴 영화 유언장 같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입니다. 언제 다시 주연을 할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꼿꼿한 카리스마를 내내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사유가 됩니다. 첫 장면에서부터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뛰어난 캐릭터 조형술에서 술술 길어올린 유머도 대단합니다.  삶을 돌아보는 반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근심이 그대로 담긴 이 작품은 어느 결함 많은 인간의 숭고한 희생을 통해 뼈가 저리는 감동을 줍니다. ‘그랜 토리노’의 휴머니즘은 따뜻하다기보다는 장엄합니다.

6위. 다우트
연기의 측면에서 본다면 ‘다우트’는 올 최고의 영화입니다. 이 작품에서 두 배우가 등장해 말을 섞는 장면들은 하나 같이 연기 배틀입니다. 특급 배우들이 펼치는 무시무시한 연기력의 향연을 끝도 없이 맛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메릴 스트립은 오차가 전혀 없는 정밀 기계 같습니다. 필립 시무어 호프먼은 등장할 때마다 평면 스크린에서 입체로 도드라집니다.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메릴 스트립의 코앞에서 폭발하며 장면을 훔치는 연기란 게 어떤 건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에이미 애덤스의 무구한 얼굴이 통째로 흔들릴 때 관객의 마음 역시 격렬하게 진동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배우들은 각각도 훌륭하지만 함께 등장할 때 액션과 리액션으로 밀고 당기면서 뛰어난 앙상블의 시너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더욱 빛납니다. 이 영화는 연기만 좋은 게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쓴 각본을 영화화한 존 패트릭 셰인리는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한 자의 빈틈없는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다우트’의 대사들은 우아한 완곡어법의 품위와 효과를 모범적으로 체현하고 있습니다.

5위. 24 시티
지아장커는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지만 현재 중국 감독들 중 가장 높이 오르고 가장 멀리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게 그의 최고작은 여전히 ‘스틸 라이프’입니다. 하지만, 그 영화적 성취와 혁신적인 영화어법에 있어서는 ‘24 시티’도 대단합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진정으로 훌륭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입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시간을 호출하고 삶을 호명합니다. 발화된 것과 발화되지 않은 것 모두를 담아내는 경이로운 화법은 영화라는 매체가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는 가장 흥미로운 방식 중의 하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진심 ‘따위’가 아닙니다. 카메라가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24 시티’의 스크린에 내내 담긴 누군가의 시선을 받아내는 일은 끝내 관객을 서늘하거나 뭉클하게 만듭니다.

4위. 업
‘업’은 가장 쉽고도 고전적인 화술로 마음의 우물을 가장 깊게 휘젓는 걸작입니다. 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애니메이션은 어떤 리듬으로 이야기를 연주해야 하는지, 언제 침잠하고 언제 비상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희망이 어우러지는 이 특별한 영화적 여행은 꿈을 풍선에, 삶을 집에 각각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은유하고 있습니다. 꿈과 모험이라는 애니메이션 본유의 영역에 가장 충실한 이 작품에는 신나는 액션과 기분좋은 유머와 아릿한 감동이 절묘하게 서로 어깨를 잇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관객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오랫동안 손아귀에 쥐고 있던 것을 놓을 수 있게 된 사람이 맞이하는 정화와 관조의 순간입니다. 만일 픽사 스튜디오의 그 모든 작품들 중 딱 4~5분 분량만 잘라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업’의 한 장면을 선택할 것입니다. 젊은 남녀가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부터, 둘 중 한 사람이 늙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다른 한 사람이 풍선을 들고 터덜터덜 귀가하는, 그토록 쓸쓸하고 아름다운 초반의 명장면 말입니다.

3위. 바스터즈-거친 녀석들
아마도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은 2009년 최고의 오락영화일 겁니다. 이 작품이 제공하는 오락의 품질이 최상급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영화적 테크닉이 절정에 달해 있기 때문이고, 이야기의 흐름부터 구체적인 액션 디테일까지 클리셰가 거의 없어 무척이나 신선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스타일은 상당히 과시적인데,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얼마든지 뻐겨도 될 겁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좋고(특히 크리스토퍼 왈츠!) 각본의 대사 감각이 절정인데다가 서스펜스가 자유자재로 구사되는 이 영화는 진짜 ‘킬링 타임’이 어떤 것인지를 넘치도록 증명합니다. 히틀러가 유럽을 삼키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역사영화이면서도 SF를 능가할만큼 과감한 상상력은 또 어떻습니까.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언제나 그랬듯, 음악 역시 이보다 더 효율적일 수 없을 정도로 장면에 잘 달라붙어 있습니다. 올해 비슷한 모티브를 다뤘던 수작으로 ‘작전명 발키리’도 있었지요. ‘작전명 발키리’가 모범생 수재의 영화라면, ‘바스터즈’는 자유로운 천재의 영화일 겁니다.

2위. 레볼루셔너리 로드
근래에 이만큼 밀도가 높은 드라마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흡사 질식할 것도 같았습니다. 빼도 될 듯한 쇼트가 단 하나도 없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중심을 향해 모든 씬들이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가는 영화였으니까요. 단 한 번도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 작품은 일단 몰입하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 같은 영화이고, 햇빛이 보이지 않을만큼 빽빽한 숲 같은 영화입니다. 말하자면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진통제가 아니라 약효가 서서히 오래가는 각성제 같은 작품입니다. 이건 결혼생활의 권태를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당신은 요즘 정말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당신의 인생관은 어떤 것이냐고 서늘하게 묻는 영화입니다. 샘 멘데스의 최고작은 ‘아메리칸 뷰티’가 아니라 ‘레볼루셔너리 로드’입니다. 그리고 케이트 윈슬렛 역시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준 ‘더 리더’가 아니라 이 영화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1위.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가 개봉한 것은 한 해의 절반이 채 지나지 않았던 지난 6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이 작품이 저의 ‘2009년 베스트 1’이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살아서 영화를 보는 행복을 전해주는 작품이었으니까요. ‘걸어도 걸어도’는 가장 정교하게 축조된 영화 구조물입니다. 여기엔 덜 조여진 나사나 삐죽 튀어나온 못 하나 없습니다. 물밑은 들끓고 있지만 수면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작품에선 어떤 상징도 돌출되어 있지 않고 어떤 디테일도 불필요하지 않습니다.

내러티브를 뒤트는 플롯 대신 마음의 골짜기를 조용히 파들어가는 이 영화에서 대사는 언제나 들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합니다. 삶에 영겁회귀하는 진원(震源)을 프레임 밖에 둔 채 에둘러가는 이 영화의 간접화법은 결국 여진(餘震)으로서의 세월을 생생한 통각에 담아냅니다. 일본영화의 역사에는 유난히 뛰어난 가족영화들이 많지만, 이 작품은 오즈 야스지로나 나루세 미키오의 고전들과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그 미학적 성취가 탁월합니다. ‘원더풀 라이프’와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이제 ‘걸어도 걸어도’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고작을 꼽는 것은 이제 제게 한 해의 베스트를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from. 이동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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