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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07 그만큼의 약함과 악함. 이동진.

이번 주에 다시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 GV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세번째로 이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가슴 속이 꽉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네요. 


최근 1~2달 동안 무려 

세 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가 개봉-재개봉되었는데, 

이 기회에 '걸어도 걸어도'와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인

'원더풀 라이프' 역시 재개봉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래 글은 '걸어도 걸어도'가 8년 전에 

첫 개봉할 때 제가 썼던 시네마레터 칼럼입니다.  

이전에도 한번 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재개봉도 되었으니 다시 한번 올려드릴게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 등장하는 가족은 평온해 보입니다. 모처럼 아들과 딸이 부모님 댁에 찾아와 한 상에 둘러 앉은 채 모두들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즐겁게 먹습니다. 

 

그들이 모인 이유가 십여년 전 바다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고나서 익사한 장남 준페이의 기일을 지키기 위해서임을 관객이 눈치채고 난 후에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선 십여년 전에 잃은 가족 구성원을 떠올리면서 누군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한 번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잘 극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긴, 벌써 십여년이나 지났으니까요.  자상한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러스한 말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화제를 넘나들지요. 무뚝뚝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까지 보이구요.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요. 식탁에 둘러앉아 별별 시시한 이야기를 다 꺼내도록 장남에 대해선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가 세월이 어느새 아픔을 치유해줬기 때문일까요.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고통으로 경험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모두는 결국 다른 사람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서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는 존재니까요.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인간의 연약한 삶이 입게 된 숱한 상처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몸 속 깊은 곳에 잠복해 있던 환부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통증을 되살립니다.

 

 영국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는 “나는 내 가족의 역사를 영화로 만든다. 만일 고통이 없다면 내 영화도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 가수 스팅은 “나는 고통과 혼란에 처해 있을 때 뛰어난 음악을 만들어내는 듯하다”고 회고한 바 있지요.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음악을 만듭니다. 누군가는 괴로울 때 그런 음악을 듣거나 그런 영화를 보며 펑펑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지만 또 누군가는 그저 입술만 깨뭅니다. 

 

‘걸어도 걸어도’의 아버지는 자신의 장남이 구해낸 아이인 요시오가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가진 청년이 된 모습을 보고서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내 아들이 죽다니. 저런 놈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라고 버럭 역정을 내며 뒷말을 합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요시오에게 친절히 대합니다. 그러나 준페이의 기일마다 고인을 기리기 위해 찾아와야 하는 요시오에 대해 “이제 저 사람은 그만 불러요. 유족인 우리를 보고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불쌍해요”라고 말하는 차남에게, 어머니는 “바로 그래서 부르는 거야”라고 조용히 속내를 드러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초래한 사람에게 그와 같은 방식으로 차갑게 벌을 주고 있었던 거지요. 

 

이 영화의 아버지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가 죽은 바다로 내려갑니다. 이 영화의 어머니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가 묻힌 산으로 올라갑니다. 극중에서 바다로 향하는 길과 산으로 향하는 길 모두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함께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다로 내려가는 사람이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보다 덜 아파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복수를 하는 이가 직설적으로 욕을 내뱉는 이보다 더 잘 견뎌내고 있다고 할 수도 없지요.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표출하는 양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거나 덜 느낀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그만큼의 약함과 그만큼의 악함으로 악착같이 견딥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필사적으로 버팁니다.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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