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삼십년이 넘게 살아온 내가, 

'환절기'라는 단어를 잊고 계절을 이렇게 또렷이 기억해도 되는걸까?


8월 24일까진 대단한 여름의 한가운데. 폭염이었고,

25일엔 갑자기 밤공기가 시원해졌다 싶더니,

26일엔 자다가 나도 모르게 이불을 폭 덮었고,

27일엔 해질녁에 신촌에서 연남동까지 걸어도 땀이 안나는걸 신기해 하며, 하늘에서 계절 명령어를 잘못 날린것 같다며 농담하다가,

28일엔 담주엔 또 더워질테니 지금 즐기자며 숲으로 소풍을 가서는,  진짜 바람이 다르다고 놀라다가,

29일엔 어어, 진짜 가을이 오려나봐? 라며 드라이기를 평소보다  더 오래하고,

30일엔 퇴근길 써늘한 바람에 감기를 걱정하게 되었다. 



2016년 08월 25일에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경사든 조사든 소식을 들었을 때,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부터 고민하게 되는 자리가 있고, 

가는거야 당연하고 바로 이어 시간, 상황, 복장 고민으로 넘어가는 자리가 있는데

지난주에 후자의 일이 있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곳이고, 

분명 저녁엔 올 수 있는 모든 분들이 오시겠다. 싶어서 

일부러 점심시간에 다녀왔는데...

아.. 한낮의 장례식장 만큼 아릿하게 쓸쓸한 곳이 또 없더라...


부친의 장례식장. 감상에 잠길 틈도 없이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으셨을테고,

그 와중에 '아빠 또 누가 왔어-'라며, 

해맑게 아빠를 찾아대는 열한살난 막내아들을 보는 그분 마음은 어떠셨을까.


라운지는 어쩌고 왔니.

너네 지난주 구매 빡세게 시켰더라. 

요즘 어떠니.

그래도 낮에와서 옆에 앉아서 얘기라고 하는구나.

고맙다.

라는 말들에 나는 왜 자꾸 마음이 짠한지...


가볼게요.

라며 허리숙여 인사하는데 사는게 뭔지. 싶어.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진짜.란 뭘까.

진심이란 뭘까. 


진짜란게 존재하긴 하는걸까.

진심이란게 전해지긴 하는걸까.

아니, 반대로 진짜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종일 했던 말과 행동도... 몇 퍼센트나 진짜였을까, 진심이었을까. 

우리는 결국. 생각하고 싶은대로.

무언가를 착각하고, 제 멋대로 판단하고, 환상을 섞어 상상해 버리는건 아닐까. 


진짜. 진심.

이제는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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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주 전부터 '그사람은 어떤 사람이야?'이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있다. 

내가 충분이 겪어보지 않은 타인에 대해서 정보를 얻기위해, 누군가에게 그사람에 대해 묻는일.


편파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모든걸 경험해볼 수 없고, 

또 경험하게 된다 한들 바쁘게 스쳐가는 수 많은 상황들에서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싶으니까.

정보를 많을수록 좋은 것. 이라고 합리화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내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 버리는건 아닌지 겁이 덜컥 난다. 


언젠가 이석원이 라천 대기실에서 희열님이 누군가에대해 물을때마다,

본인이 느꼈던 곤란함에 대해 적은 글이 있었는데, 딱. 그 기분.

(였나 반대였나는 가물하다... 보통에 존재에 있던 에피소드인데... 지금 찾아볼 책이없네ㅠ)


내가 물을때도, 누군가 내게 물을때도. 고민이 많이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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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타령을 하고있자니.김영하님도 생각나는 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from. 보다.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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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해봐.
어느날 세상의 굶주리는 길 고양이들이 너무 마음이 아픈거야.
그래서 나랑 마주치는 길 고양이의 한 끼는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며 맨날 소세지 하나를 가방에 넣고 다녀.
어떤날은 그 소세지를 내가 먹어 버리고 싶을 때도 많지만 잘 참고, 
그렇게 몇 달을, 언제 마주칠지 모를 길고양이를 위해 소세지를 챙겨 다녀.
그러다 결국 어느 새벽에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는거지.

이 때다 싶어 급하게 껍질을 까서 소세지를 내밀었는데, 
글쎄 그 고양이는 쳐다도 보질 않고 제 길을 가네.
우쭈쭈 거리며 소세지 반쪽을 들고 고양이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느껴.
아, 쟤한테는 이 소세지가 별로 필요 없을 수 도 있겠다.
소세지를 싫어하는 고양이 일수도 있지.
길고양이는 당연히 배고플거란거...어짜피 내 편견 아닌가...

근데 그 고양이는 진짜 배가 고팠거든,
음식중엔 소세지를 가장 좋아했고,
심지어 그 사람은 눈치조차 못챘지만 매일 집에 들어가는 그 사람을 몇달째 바라보고 있었어.
마주치면 반갑다고 제 딴엔 꼬리도 흔들었는데, 그 사람 눈에 띄진 못했나봐. 

오늘도, 배고픈 고양이는 꼬리를 흔들다 지쳐 돌아서고,
도도하게 걸어가는 고양이 뒤를, 소세지 반 쪽 들고 멍하게 바라보는 누군가를 상상해봐.
내가 고양이일지, 소세지일지, 그 누군가 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야.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어.



대신 설렘도 없지.









반쯤 피어 딱 보기 좋은 목련을 가지치기 하듯 베어 두셨기에 아까운 척을 좀 하니 다 가져가란다.

순간, 나무에 피는 꽃으로 꽃병을 채우는 호사를 누릴까도 했지만 이내 아니다 싶어 한 송이 들고 계속 목련 향을 맡았다.


요즘 들어 순간 순간.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내 마음의 가난을 마주한다.

그때마다 정확히 왜 인지 모를 불안이, 무엇을 위함인지 모를 불안이 참 어렵다.

 

살아가면서. 내 뜻대로 가릴 수 있는 것도. 감출 수 있는 것도. 만들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는 걸 어느 덧 알게 되어서.

마음의 가난을 감추는 방법보다 자체를 없애려는 고민을 많이 하는데 항상 결론은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나의 문제.






그래도, 상황이나 타인을 탓하지 않을 수 있어 감사하다. 싶었다.

누구는 내가 이래서 안되는거라고 끌끌 혀를 차겠지만 그래도 뭐.










 






 





"난 내가 나쁜년이라는걸 인정 하기로 했어"

"나도. 요즘 '난 싸가지가 없으니까'라는 생각을 항상 해" 





우리 나쁜건 인정 했으니,

나쁘더라도 혹은 나쁜만큼 행복하게 살자.












연극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진심이 아니라면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매력이 없는게 없고 이해가 안되는 것이 없어서, 

결국 결정적으로 중요한건 타이밍이고 쿵짝이고 합이란 생각.










일이 많았다.

말그대로 work가 많았다.

단기적으로 최근 2개월은 매일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과 생각의 120%이상을 썼던것 같은데,

어느 순간 '요즘도 많이 바쁘니'라는 말을 '밥먹었니?'정도로 듣고있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게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란걸 깨달았다.


그러던 와중에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의 바구니는 차고차고 넘쳤는데,

우습게도 원인도 알고, 한계도 알고, 심지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알겠는데 정리는 안되는 묘한 상황도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신뢰하는 좋은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큰 위로와 조언이 되어주었는데, 

이런 감정에 대한 경험은 남겨두고 싶지만 일일히 적기엔 조금 민망하여 캣우먼의 공감가는 칼럼 하나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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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십니까?

 

정말 지독하게 긴 겨울이었다. 폭설도 몇 차례, 한파는 끝날 만 하면  불청객처럼  다시 찾아왔다. 원고 작업할 때는 책상 앞에서 등을 웅크리고 집중하는 터라 가뜩이나 소화도 안 되는 데 너무 춥다보니 체기를 노상 달고 살아 사혈침까지 샀을 정도였다. 체력은 겨우겨우 버텨내기에 바빴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 올해 나의 목표, 그것은 바로 ‘피로해지지 않는 것’이다. ‘안티 스트레스’나 ‘건강’보다 더 구체적인 실천의 일환으로 나를 피로한 상황으로 몰고 가지 말자는 다짐이다. 스트레스는 때로는 내가 통제하긴커녕 저 쪽에서 알아서 몰려오는 경우가 있다. 건강이라는 상태도 다소 추상적이다. 대신 내 몸의 상태나 감각에 대해 더 예민해지는 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평소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무척 신경을 쓰는 소심한 사람이다. 즉 강해보이고 싶은 탓에, 부탁받은 일은 상대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찍 해주거나, 일이 들어오는 대로 무조건 해낼 수 있다는 듯이 받아버린다. 게다가 성격도 엄청 급하고 다소의 불안증과 강박증 증세도 있어 마감 전날에 벼락치기로 해서 넘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늘 모든 일을 앞당겨서, 즉 내일이나 다음 주에 해도 충분한 일을 굳이 오늘 끌어와서 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주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거기서 값싼 스릴감을 만끽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일을 가진 엄마들이라면 적지 않게 이런 강박증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나의 경우 집에서 일하는 엄마이다 보니 육아의 백업플랜이 오히려 마땅치 않다. 그래서 원고를 쓰면서도 ‘혹시 갑자기 아이가 아프면 어쩌나’ 싶어 늘 일찍일찍 미리미리 써놓았던 것이다. 마음은 갸륵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일을 몰아서 ‘끝장을 보는’ 성격은 나 자신을 격하게 소모시킨다. 소모시킨 후 약으로 커버하니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생활. 아, 이젠 정말 벗어나고 싶다. 과로와 체기와 불안증의 버뮤다 트라이앵글.

 

사실 해결방안은 매우 명백하고 심플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것은 ‘피로해지기 전에 멈추기’. 다. 프리랜서 좋다는 게 뭔가. 바로 스케줄의 자율적인 관리인데 나는 늘 그 자유로움을 경계하며 과하게 통제했던 것이 문제였다. 가령 아이 유치원 하원 픽업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만 더 글을 쓰면 원고를 다 완성시킬 수 있다고 치자. 나는 그럴 때 다다다다 온몸의 마지막 육즙을 다해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결국 끝을 본다. 사실 그 날 저녁 늦게나 다음날 해도 무리가 없는 데 말이다. 그래놓고선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쾡한 눈동자로 아이를 마중나간다. 그 후로 이어지는 저녁밥 차려먹기, 아이씻기기, 아이와 놀아주기 등의 저녁시간은 정말 고통스럽다. 그러면서 왜 내가 아까 거기서 펜을 놓지 못했을까 후회막심이다. 대신 다음날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오전에는 충분히 쉬고 오후부터나 일을 시작해야지 싶다. 한데 왠걸, 다음날 아침이면 마음이 싹 바뀌어 오전부터 또 ‘달리는’ 것이다. 그래놓고 그날 오후쯤이면 또 뻗고 저녁엔 또 다른 자기혐오에 빠지고의 무한반복…

 

그간 일은 무조건 ‘피곤’해야 된다고 생각해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피로회복제를 들이킬 정도까지 고돼야 마치 일을 할 만큼 했다고 착각하는 자기몸 학대의 습관이 뼛속 깊이 배였나보다. 무리다 싶기 바로 직전에 ‘올스톱’을 외치고 편안한 느낌의 상태에서 쉬다가 나중에 다시 일을 하면 훨씬 더 효율도 좋을 터인데.

 

피로해진다는 것은 마음과 몸을 내가 훼손시키는 일이다. 목적을 위해 내 몸과 마음을 도구화시키는 것. 똑같이 바쁘다 해도 피로를 느끼는 사람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일이 나를 부리는가, 아니면 내가 일을 하는가의 차이. 이것은 단순히 ‘게을러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균형일 것이다.

 

이토록 싱그러운 봄의 계절이 마침내 찾아왔는데 나는 지난 겨울에 그랬던 것처럼 빌빌대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 작업실에서 혹은 집에서 ‘아, 이거 거의 내 한계다’ 싶을 때는 툭 전선을 내가 먼저 끊어버릴 수는 없을까? 주변 사람들은 절대 먼저 나를 위해 끊어주질 않으니까. 끊어버린 후 왠지 안절부절 불안하다면?그럴 때는 걷자. 바깥공기를 마시며 잠시 한숨을 돌리며 산책을 해보자. 건물 밖으로 못 나간다면 건물 안에서라도 걷자.  평소의 동선에서 벗어나 긴장감을 풀고 내 몸과 마음을 잠시 원 위치 시켜보자. 또한 현대의 생활에서 ‘피로해지지 않기’ 위해 중요한 것은 양질의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일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 사용 이후 SNS에 중독된 바람에 자기 전에도 누워서 전화기를 보고 있고 새벽에도 잘 깨고, 깨었다 하면 또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어 그간 숙면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 어떻게든 깨어 있을 동안 내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잠만은 충분히 잘 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런 글을 내가 쓰게 된 것도 나이탓일까? 친구들끼리도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지만, 건강도 글로 배우거나 말로 다하는 게 아닐 것이다. 내 몸을 생각해주는 것, 시선을 외부의 정보보다 내 안의 느낌으로 향하게 하는 것. 내 직감과 본능에 의존하며 내 몸을 지켜나가는 것, 아무래도 그것만한 게 없을 것 같다.정말이지,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해내야 할 일은 없고 내 마음에 상처를 줘가면서까지 지켜내야 하는 관계는 없다.


from. 캣우먼 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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