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폴킴.

2017.01.24 00:18 from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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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다 말다 우산을 챙길까 말까 
tv엔 맑음이라던데 네 마음도 헷갈리나봐 

비가 또 내리다 말다 하늘도 우울한가봐 
비가 그치고나면 이번엔 내가 울것만같아 

Strumming down to my memories 
지직거리는 라디오에선 또 뻔한 love song 
잊고있던 아픈 설레임 널 생각나게해 

우리 걷던 이길위에 흘러나오던 멜로디 
흥얼거렸었지 넌 어디있니 
하늘은 이렇게 맑은데 

비에 젖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도 비춰주던 너는 
나에게 햇살같아 그런널 왜 난 보냈을까 Good bye 

So hard to lose but easy to repeat 
푹 숙인 얼굴 날 알아봤을까 
I'm losing my breathe 
잊고싶은 아픈 기억들 날 더 힘들게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나눴던 수많은 밤과 사랑노래 
꿈보다 달콤했지 쉽게 포기한건아닌지 
우연히널 마주친 순간 내 마음 들킬까봐 뒤돌아섰어 
널 잡았다면 그런 널 왜 난 보냈을까 Good bye 

우리 걷던 이길위에 흘러나오던 멜로디 
흥얼거렸었지 넌 어디있니 
하늘은 이렇게 맑은데 
비에 젖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도 비춰주던 너는 
나에게 햇살같아 그런널 왜 난 보냈을까 Good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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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첫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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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여. 2015.

2017.01.23 01:01 from record











2017년 두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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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어떤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서는 

늦은 오후의 햇살처럼 기억되는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고 제게 말했을때 

저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다 그사람이 

저를 조금씩 

포기하고 

포기하다 

마침내 

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을 때 


그래서 그 사람이 

저에게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말하던 

바로 그 순간에 

전 

갑자기 

엷은 웃음이 났어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언젠가 본 영화의 대사 한토막이 

떠올랐거든요. 



너에겐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영원히 그럴거야. 평생 동안. 



그 사람은 

그런 저를 보며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이 오가는 순간에 

웃을 수가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어하는 눈치 였지만 


저의 웃음은 

내게 이별을 고하는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번진 

어떤 애틋함의 발로였어요. 


슬프지만 돌이킬 수 없고 

원망할 수 있는 건 내 자신뿐이던 

그 순간에. 


그렇게 

그 사람을 떠나 보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 했죠. 


아마도 내가 

아까 

우리가 이별하던 순간에 

느꼈던 그 애틋함이 

바로  

그가 말하던 

늦은 오후의 햇살이 

아닐까 하고. 


그게 앞으로 

평생 나를 

어쩌면 우리를 

비추지 않을까 

하고.  


사랑은 엇갈리죠. 

자주. 


내가 오면 너는 가고 

네가 오면 나는 가고. 


 모르겠어요. 


어째서 

이별뒤에 홀로 바라보는 세상 풍경은 

이토록 투명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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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blog.naver.com/dear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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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진 상태에서 미소를 짓기란 쉽지 않다. 

심리적인 부담이 큰 상황에선 타인이 눈에 잘 들어오기 않는다. 

아이를 키울 때도 챙겨야 할 일이 많고, 

해줘야 할 일이 많다고 느낀다면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의 눈빛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사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은 그저 아이를 챙기는 노동이 되고 만다. 

얼마나 챙겼는지 확인하고, 무엇이 빠졌는지 검토하느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을 만들 여유는 사라진다. 


객관적인 부담과는 관련 없이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클 때도 

아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상대를 궁금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라면 욕망이나 열정, 결심만으로도 

상대를 궁금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랑이 유지되려면 

내 마음에 상대를 받아들일 공간이 충분해야 하고 

자잘한 이야기를 듣고 일상을 함께 할 여유가 필요하다. 


이 시대의 육아가 어려운 점도 그렇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무척 많은 것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아이가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리라 믿는다. 

그러다 보니 해줘야 할 일들이 주는 부담에 치여서 

정작 그 사랑하는 아이를 들여다보고 반응할 시간은 없다. 

내 마음에 부담과 할 일이 가득차니 

아이는 마음 속에서 쫓겨난다. 


부모들의 부담은 아이에게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는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안정되게 살고 싶으면 

더 많은 노력을 하도록 강요한다. 

그런 일들을 해야지 비참함에 부딪히거나 

운명에 휘둘리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것만 같다. 

그래서 또 내 앞에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무더기로 쌓인다. 


미래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오늘도 할 일이 많고, 

여전히 머릿속엔 채 달성하지 못한 

여러 일들이 가득하기에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상대를 바라보며 

보낼 시간은 갖기 어렵다. 

의미없는 말에 귀 기울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함께 긴 길을 걷고 

소소한 재미에 더불어 웃는 시간을 갖기란 어렵다. 


사랑에는 그런 순간이 가장 필요한데,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그 시간들이 가장 필요한데 

가장 필요한 시간을 줄 마음의 여유는 없다. 

그래서 아이도 사랑이 아닌 다른 것, 

능력이든 힘이든, 아니면 자격이든, 스펙이든 이런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사랑하기에 사랑을 잃는다. 

안정적으로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다. 

모든 것을 가르치려 하지만 사랑을 가르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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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서천석 페이스북. 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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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와 사랑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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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난 할 수 있다'며 결의를 다지겠지. 나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끊임없이 번민했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게 이상했다. 


:: 우선 내 감정이 중요하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내 인생 3년을 그런 쓸모없는 일에, LPG 가스통과 화기를 서로 친하게 만드는 작업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기회비용도 엄청나다.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해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감정 상태로 스스로를 가꾸면 3년 동안 장편 소설을 최소한 다섯 편은 쓸 수 있다. 내가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감정 상태로 있어야 아내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할 수 있다. 남을 사랑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든다. 

 솔직히 내 부모님과 HJ가 왜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명절에 싫다는 아내를 자기 부모님 댁으로 굳이 데리고 가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걸까. 보기 싫은 친지들을 만나러 큰집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 상담이 급증하고 형제간 폭행으로 누군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꼭 나오는데, 다들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친지들을 만나는 걸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모를 것이다. 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 관습의 압력에 맞설 용기가 없다.

...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내 가족관은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건강하다. 나는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이 서로를 대형 폐기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 .. 또 다들 어휘력이 빈곤해 조금 전에 본 별세계를 묘사하거나 그에 대해 토의할 실력이 되지 않았다.  

 에스키모인들에게는 눈을 묘사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라고 한다. 그런 단어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땅에 눈이 쌓인 정도와 습도를 세밀히 분간하고 어제 내린 눈과 오늘 내린 눈의 다른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바닷속 풍경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단어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배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해저에 대해 아는 단어라고는 열대어, 불가사리, 니모, 산호 정도가 고작이었다. 


:: .. 둘 다 제법 능숙해 보였다. 실내 이론 교육과 얕은 물에서의 실기 연습 덕분이었다. 나는 서로 사랑하는 법, 의미 있게 사는 법도 누군가 얕은 물에서 친절하게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허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때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삶의 의미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가오는 허구들. 나는 그 허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쉴 새 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심지어 나는 그 일로 돈을 벌려 하고 있다. 허구는 익사에 대한 공포와 수면 위로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바닷물이자 산소통 그 자체다. 어떤 허구에는 다른 허구로 맞서고, 어떤 허구에는 타협하며, 어떤 허구는 이용하고, 어떤 허구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 앞으로 우리 부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에세이를 써놓은 주제에, 내가 술에 취해 바람을 피우게 될지도 모르고, HJ가 운명적인 사랑을 발견해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 이 책은 결혼과 사랑과 믿음에 대한 지독한 아이러니의 사례가 되겠지. 나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2014년 11월에 나는 HJ와 3박 5일로 보라카이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훼손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이야기 속에서 행복하고, 결말은 '너무 좋았다'이다. 나는 2014년 11월을 그 이야기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틀림없이 좋았던 부분을 틀림없이 좋은 것으로 지켜준다. 그게 이야기의 힘이다. 그 힘을 얻고 싶어 이 에세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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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음식을 너무 많이 사오지 말자-라는것이 이책의 유일한 교훈이며, 제대로 사는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더 즐겁고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늘 고민한다는 장강명의 에세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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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엉망이었나요? 유난히 힘들었나요? 뭐 하나 되는 일 없이 하루를 잃어가나요? 
수없이 많은 날 중에 그저 그런 날이 있죠 시끄러운 이 하루만 지나면 괜찮을 테니 

오늘 밤은 평화롭게 오늘 밤은 울지 않게 
아무 근심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살며시 웃으며 잠들길 편히 쉬어요 Good Night 

눈물이 많아졌나요? 가끔 그럴 때가 있죠 견디려 애쓰지 말아요. 내일은 괜찮을 테니 
오늘 밤은 평화롭게 오늘 밤은 울지 않게 아무 근심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살며시 웃으며 잠들길 편히 쉬어요 Good Night 

워어 워어 워어 라랄라 편히 쉬어요 Good Night 워어 워어 워어 라랄라 편히 쉬어요 
Good Night Good Night, Good Night, Good Night 

오늘 밤은 평화롭게 오늘 밤은 울지 않게 아프지 않기를 다치지 않기를 살며시 웃으며 잠들길 편히 쉬어요 
Good Night 워어 워어 워어 라랄라 편히 쉬어요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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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문신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른쪽 팔에 쓰인 글귀가 무슨 뜻인지 물어왔고 나는 그때마다 비밀이라고 말했다. 혹은 ‘탕수육은 소스에 찍어먹는 게 아니라 소스를 부어먹는 것이다’ 정도로 때에 따라 다르게 설명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대단한 글귀라서가 아니다. 이런 종류의 말은 남에게 권할 것이 아니라 입 다물고 내가 혼자 조용히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까먹지 않으려고 굳이 살 위에 써놓은 것인데 그 의미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낭비가 아니겠는가. 탕수육 이야기는 다시 한번 미안. 실은


현실주의자가 되자, 하지만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라고 쓰여있다. 68혁명 당시 게바라가 한 말이라고 대중에 알려진 글귀이지만 대개의 유명한 펀치라인이 그러하듯이 실제 화자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사실 내게는 그게 누가 한 말인지보다 문장 자체가 더 중요했다.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되 결코 이루어질리 없는 뜨거운 무언가를 그 기반에 두자는 것.


이 생각은 내게 참 소중했다. 내가 만난 많은 어른들은 정확히 그와 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으로 몽상가처럼 세상에 관한 따뜻하고 근사한 말을 늘어놓되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단 한치의 손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뜨거움으로 그를 믿어왔던 주변의 많은 이들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던 건 그들이 딱히 남들보다 악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는 편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훨씬 더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그게 내가 살아오면서 목격하고 학습한 이 세상의 ‘어른스러움’ 혹은 ‘사회화’였다.


스물 두살이었다. 군대를 제대했지만 복학하지 않았다. 등록금과 집세와 생활비를 벌어야했다. 건설현장에서 모래를 고르는 일부터 아무개 브랜드의 피팅모델까지 하루에 몇개씩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나는 이 피팅모델 경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떠벌이는 경향이 있다. 나도 젊고 예뻤다…). 그러다 일확천금의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일이 텔레마케팅이었다. 아무튼 나는 입으로 하는 일에는 뭐든지 자신이 있었다.


광화문의 큰 빌딩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어린애들이 일렬로 앉아있었다. 이 아이들보다 유능해보여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지 않고 테헤란로 직장인의 각도로 비스듬히 서서 큰소리로 전화를 해댔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정대만 생각을 했다. 내가 당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노력의 아이콘이었다. 면접을 보러 들어갔는데 하마터면 감독님 전화로 물건을 팔고 싶어요, 라고 말할 뻔했다. 사흘 후에 합격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엄청나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더니 그때 사무실 앞에 앉아있던 애들 그대로 다 있더라.


사무실은 인사동의 작은 건물로 옮겨졌다. 일전의 큰 빌딩은 본부고, 이렇게 팀을 꾸려 다른 사무실로 분가하는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팀장은 다소 비만에 나이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서른 즈음으로 보였다. 부장은 바싹 말랐고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물건을 팔기 위한 전화 통화 시나리오를 각자 써냈다. 내 것이 채택되었고 나는 곧장 부장의 신임을 얻었다. 육체 노동이여 안녕, IMF시대는 금 모으기가 아니라 오직 나 같은 인재를 발굴하는 일을 통해서만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차량에 설치하는 GPS를 팔았다. 당시의 GPS는 화면 같은 게 없었고 그냥 과속 카메라가 있을 때 음성으로 신호를 보내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그걸 엄청나게 팔았다.


부장과 인사동의 작은 민속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그는 좋은 어른으로 보였다. 부장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 이야기도 하고 정치 이야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팀원들이 하나 같이 자식 같고 가족 같은데 한참 공부해야할 시기에 시대를 잘못 만나 이렇게 나와서 돈을 벌어야한다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 나는 엄청나게 감동했다. 그리고 저런 어른이 되어서 나중에 나보다 어린 청년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장은 9월 25일 도망쳤다.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는 건 그날이 월급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사무실 문은 잠겨있었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한살이 더 많다는 이유로 대책위원장 비슷한 것이 되었다. 팀장을 찾아가봤지만 자기도 피해자라는 말 이외에 별 게 없었다. 부장은 사무실 집기와 직원들의 두달치 월급을 챙기고 사라졌다. 경찰과 노동청을 방문해 이런저런 서류를 작성하면서 나는 참 마음이 복잡했다. 무엇보다 그 좋은 부장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거의 두달 후에야 부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동대문 이대병원 앞에서 만났다. 부장은 자기를 그만 괴롭히라고 말했다. 돈이 있으면 주지 않았겠느냐며 자기는 가족이 전부 흩어져서 고시원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원래 고시원 살았다는 말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다가 목젖에 걸려 허우적대며 도로 들어갔다. 부장이 너무 낯설어보였다. 나는 그게 무척 슬펐다.


이후로 많은 어른들을 만났다. 나는 불행하게도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그것이 사회 일반의 반영인지 혹은 그저 나의 박복함의 결과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최악의 어른이란 늘 갱신되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상황은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나빠졌다. 아주 잠깐 불었던 20대 청년운동의 바람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윽박 아래 수렴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 위로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점점 더 불리해지고, 그 불리함은 더욱 더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어졌으며, 젊은이들은 거짓 위로로 가득찬 힐링 스팟들로 파편화되어 도피했다. 어른들이 만든 체계가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걸 안전하다고 믿었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 명백한 죽음을 두고도 어른들은 좌와 우를 나누어대며 남겨진 자들을 능욕했다.


나도 이제 그들의 나이에 가깝게 되었다. 정말 무서운 건, 나도 그런 종류의 어른스러움에 너무나 익숙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늘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란 자기보다 어리고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냉정하되 속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그에 기반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자기보다 젊은 이의 신념을 위해 내 신념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되고 싶은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날 멀어져가는 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던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났을 때,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게 너무 부끄럽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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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ozzyz.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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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상을 공유하는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 할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거의 모든것엔 사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게 수필, 또는 어떤 종류의 소설이나 노래가사의 의미라고 생각을 또 하고. 

우리는 거창한것을 사는것이 아니고 작은것들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게 목표라고 감히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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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오지은 po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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