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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2016.

_sran 2016. 7. 3. 21:00









::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 죽지 않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죽었다. 당시 '황해'가 끝나고 난 뒤였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선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니깐. 장례식에서 예배를 드리고 스스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확장하고 확장했다. 그렇게 찾은 이유를, 시선을 부감으로 와이드해서 봤더니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의 시작은 피해자에 대한 고민부터였다.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답은 있는데 '왜'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답은 없더라. 왜 이 사람이어야만 했는지, 왜 이 피해를 입어야만 했는지. 현실에서는 '어떻게'라는 답에서 충족하는데 '왜'에 대한 질문은 현실 범주에서 생각할 부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순간 공포가 찾아왔다. 이 영화에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 무서운 생각이 든 거다. 인간 존재를 생각하니 가장 밀접한 신이 생각이 났다. 일단 들었던 생각은 이거다. 이 모든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신이 있기는 한 것인가. 실재는 하느냐. 선하긴 한거냐. 바라만 보는 거냐. 도대체 (이 곳은) 왜 이런가. '곡성'은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무명이 종구에게 죄를 지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이 맞다. 종구가 아닌 다른 시선에서 보면 종구는 멀쩡한 사람을 의심하고 깽판 치고, 죽이려고 하고, 시체 유기까지 하면서 딸 아이를 살리려 죄를 짓는다. 신(무명)은 그 모습을 전부 봤다. 종구는 결국 신을 만났지만 혼란에 빠져 의심을 하고,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혼돈을 겪다 신의 손을 뿌리친다. 엔딩에 보면 무명이 골목길에 오그리고 앉아 있는 그림자가 보인다. 난 그게 현재 신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이 무명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화가 신에게 질문하고 싶은 내용이겠다. 선과 존재를 증명하고, 바라보지만 말아달라. 인간이 인간다워지게 다시 다가와 달라는. 


:: 종구의 플롯과 일본인의 플롯은 다르다. 이 일본인은 죽임 당한 상태로 유기되는 순간 종구의 플롯에서 사라진다. '곡성'의 공간 자체도 그렇고 영화가 매우 한국적인 플롯 안에서 이뤄져 가는데 일본인은 그렇지 않다. 저는 예수를 모티브로 외지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랬듯이, '곡성' 사람들에게 외지인은 세상을 뒤엎을만한 위험한 존재로 성장한다. 신을 믿는다면 다가오는 외지인이 선이라고 믿겠지만,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악이라고 여기는 거다. 외지인이 뭘하려고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구원하려는 것 같다. 종구 플롯에서 벗어나서 보면 외지인은 홀로 묵묵히 뭔가를 하면서 수행하고 기도한다. 외지인이 한 대사를 보면 성경에 나온 예수의 말 뉘앙스와 비슷한 것이 있다. 마지막에 부활한 그가 악마의 형상이 된 이유는 부활한 예수를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것에서 착안했다. 그렇다면 이런 형상이어도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관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 과연 이런 상황이 온다면 믿을지, 혹은 믿지 않을지.


:: 이삼이 동굴로 들어가면서 동굴 안과 동굴 밖 세계는 분리되고 서문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관객에게 믿음과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 동안 보여드렸고 그 결과도 보여준 상황에서 나름의 답을 내려야 했다. 진정한 메시아가 악마의 형상을 한 채로 온 것인지, 메시아의 형상을 한 악마를 진짜라고 믿으면서 경배한 것인지 질문을 던진 다음에 관객들에게 선택하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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