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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 대하여.


고등학교 때였나, 동네 햄버거집에서 버거를 먹고 있는데, 당시 인기가 아주 높았던 지누션이 가게에 들어와서 버거를 먹고 갔다. 당연히 분위기는 난리였다. 서울깍쟁이들이라 대놓고 환호를 보내지는 않았어도 모두 볼을 붉히며 사인을 받으려고 하거나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줄을 서서 사인도 받았던 것 같다. 단지 이동중에 버거가 먹고 싶을 뿐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누션도 딱하다.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멋있었던 지누션의 모습이 아닌 지누션이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자마자 급변한 공기였다. 나와 내 집단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누션의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야 파운데이션 두꺼운거 봤어? 긁으면 긁히겠더라? 키가 생각보다 작던데? 야 머리 열라 커. 아까의 달뜬 기분과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 맹렬히 독설을 뿜었고 그건 우리를 조금 우쭐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웃긴 건 난 지누션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집에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다. 그런데 받았던 사인은 그날 밤 바로 사라졌다. 그래서 난 누군가가 사인을 해달라고 할 때는 돌아서자마자 버려질 것을 생각하면서 내 이름을 쓰곤 한다. 


존경하는 여성이자, 훌륭한 각본가이자 작가이자 감독인 노라 에프런의 책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에스콰이어>지의 에디터였던 노라 에프런은 유명한 작가 릴리언 헬먼을 만나고 그녀에게 흠뻑 빠진다. 그리고 운좋게도 그녀와 친구가 되지만, 슬프게도 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점점 번거로워진다.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이 관계에서 빠져나올 사소한 핑계를 찾아내고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그것에 대해 노라 에프런은 말미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진실은, 이런 종류의 로맨스가 끝장날 때에는 어떤 변명이든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세부사항들만 조금 다를 뿐 이런 이야기는 항상 똑같이 진행된다. 젊은 여성이 나이든 여성을 우상화한다. 젊은 여성이 나이든 여성을 따라다닌다. 나이든 여성이 젊은 여성을 받아들여준다. 젊은 여성은 나이든 여성이 그저 인간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중략) 세월이 흐른다. 젊은 여성이 나이가 든다. 그리고 로맨스가 그렇게 끝장난 것에 대해서만큼은 사과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지금 쓰는 글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과문이다.” 


노라 에프런과 릴리언 헬먼의 매력적이었던 우정과 지누션과 내가 파파이스에서 공유한 몇 분을 동일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녀가 동경이 환멸로 바뀌는 과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적어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당시 나의 옹졸했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강박도. 


그 몇 분은 나에게 의외로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내가 이런 직업을 택해서 아마 더더욱. 나는 나에 대한 동경을 믿지 않는다.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찰나의 진실이지 일 분만 지나도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서 멈추면 될 텐데 그만 더 꼬여버려서 ‘그럼 환상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처음의 눈부심만큼 실망이 들어찬다면 눈부시지 않으면 될 것 아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물이 아닌 무언가를 파는 주제에 꽤나 건방진 생각이었다. 


동경이란 무엇일까. 환상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불일치, 몰이해에서 오는 사랑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달큼한 공기가 음악 비즈니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맨얼굴을 드러내야지. 


이렇게 생각해온 나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처를 입을 일이 많았다. 맨얼굴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해버린 사람 앞에서는 역시 변할 마음이었다며, 내심 이죽거렸다. 

어차피 사라질 동경이라면 애초에 생기지도 말아라. 어차피 사라질 사랑이라면 애초에 생기지도 말아라, 날 나중에 싫어하게 될 거라면 좋아하지도 말아라, 

라는 마음은 결국 어리광이었는데. 다르게 말하면 

하지 않는 사랑을 주세요, 

라는 아이 같은 마음. 

흔한 패턴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타인에게 환상을 가지게 하려는 인류의 노력에도 당연히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조금 늦게 깨달은 것 같다. 


부끄럽지만 이십대 초반에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일층에서 떨어지면 발만 접지르고 끝나겠지만 십층에서 떨어지면 목숨을 잃으니까, 날 십층까지 올리지 말아달라고. 지금은 십층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정성이고 사랑임을 알겠다. 비록 오래 가지 않는다 해도. 


나는 지누션을 좋아했고, 노라도 릴리언을 좋아했다. 그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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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익숙한 새벽 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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