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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우리 부부는 길냥이 두 마리를 데려다 키웠다. 때로는 그런 작은 결정이 인생을 바꾼다. 아내는 그 후로 동물 보호, 더 나아가 동물의 권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만우절 아침 나는 잠든 아내를 깨우며, “정부가 길냥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기로 했대”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너무 뛸듯이 기뻐하며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장하나 의원이라는 국회의원이 있는데 우리가 그 의원을 후원해야한다”고 선언했다. 아내가 본 기사는 장하나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른바 동물원법에 대한 것이었다. 동물의 본성을 무시한 환경 속에서 학대당하는 전시 동물을 위한 법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그때부터 장하나 의원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시멘트 바닥에서 우울증을 겪는 원숭이가 불쌍해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다른 모든 약자에 대해서도 공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잠비크의 굶주린 어린이를 후원하면, “우리나라에도 결식 아동이 있다.”고 말하고, 동물학대를 고발하면, “인간에게나 관심을 가져라.”고 훈계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우리나라의 결식 아동을 돕고, 학대 받는 인간을 구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동물에 대해 가혹한 자가, 인간 약자에 대해서도 가혹한 반면, 인간 약자에 대해 가혹한 자가 강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비굴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반면, 힘이 약한 동물에게 너그러운 이들은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도 관대했다. 우리 부부는 장하나 의원이 그런 사람이었기를 바랐다.


후원회원이 되면 그 의원의 의정활동을 상세히 보고받게 된다. 장하나 의원의 이후 행보는 우리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가해기업 처벌을 위한 입법 활동을 벌였다(나는 이 사건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를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정부도, 언론도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마트에서 산 살균제를 가습기에 넣었을 뿐인데 가족의 폐가 돌처럼 굳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 21세기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 또한 그녀는 산학협력이라는 미명 아래 기업에서 착취당하는 현장실습생들을 위한 법을 발의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이른바 칼퇴근법을, 건물주로부터 핍박 받는 임차인들을 위해 상가임대차보호 관련법을 발의했다. 원룸과 고시원에서 시들어가는 청춘들을 위해 청년주거 정책도 마련했다. 동물에 대한 사랑도 식지 않았다. 그녀는 사육곰 관리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고,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를 위한 법률도 발의했다. 지난 해 가을에는 부산의 아쿠아리움 갇혀 있던 상괭이(토종 돌고래) 오월이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도록 돕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나는 그저 1년에 10만원을 내는 일개 후원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서울 연희동으로 이사오면서 숲을 밀어버리고 빌라를 짓겠다는 개발업체와 싸우게 되었다. 엄청난 개발 이익에 눈이 먼 포클레인은 무지막지했다. 관계기관들은 주민들의 거듭된 민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마침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한 기자가 수십 년간 개발이 불가능했던 숲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사라질 수 있었는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때는 마침 국정감사 기간이어서 기자는 국민의 대표에게 부여된 권능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처음으로 찾아간 의원이 환경노동위원회의 장하나 의원이었다. 그 기자로부터 장하나 의원실에서 연희동 개나리언덕 난개발의 허가와 관련한 자료들을 샅샅이 찾아내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참 재미있는 우연이네요. 제가 바로 장하나 의원 후원회원이거든요.”라고 말해주었다. 기자는 이 재미있는 우연을 다시 장하나 의원실에 말해주었다고 했다. 언론의 취재와 국회의 도움, 주민들의 투쟁으로 허가과정의 결정적 문제점들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다행히 개나리언덕의 난개발은 멈췄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국회의원 장하나입니다.” 

그녀는 20대에 노원갑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하기로 했다고 전하면서 자신의 후원회장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의외였다. 일면식도 없었던 데다가, 나 같은 사람이 맡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하나 의원은 여의도 정가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방식을 따르고 싶지 않으며, 후원회원 중 한 분이 맡아주시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설득되고 말았다.


“저는 1997년 이후로 투표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작가는 글만 열심히 쓰면 된다고 생각했고, 정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개나리언덕 사태를 겪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의회 제도와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에 살게 되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밖에 대안이 없으시다면 후원회장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장하나 의원의 후원회장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국회를 떠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아마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카리스마도 필요하고, 협상력이나 결단력도 요구될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정말 필요한 국회의원의 덕목이라 믿고 장하나 의원이야말로 그런 믿음에 가장 잘 부합하는 정치인이라 또한 믿고 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20년 가까이 투표도 안 하던 정치 냉담자가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이 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나는 단지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 때로는 정말 작은 결정 하나가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2016. 2. 18

국회의원 장하나 후원회장

작가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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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청년국회의원 장하나 페이스북페이지. 201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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