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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기록

피곤하십니까.

_sran 2013. 3. 4. 01:55


일이 많았다.

말그대로 work가 많았다.

단기적으로 최근 2개월은 매일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과 생각의 120%이상을 썼던것 같은데,

어느 순간 '요즘도 많이 바쁘니'라는 말을 '밥먹었니?'정도로 듣고있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게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란걸 깨달았다.


그러던 와중에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의 바구니는 차고차고 넘쳤는데,

우습게도 원인도 알고, 한계도 알고, 심지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알겠는데 정리는 안되는 묘한 상황도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신뢰하는 좋은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큰 위로와 조언이 되어주었는데, 

이런 감정에 대한 경험은 남겨두고 싶지만 일일히 적기엔 조금 민망하여 캣우먼의 공감가는 칼럼 하나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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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십니까?

 

정말 지독하게 긴 겨울이었다. 폭설도 몇 차례, 한파는 끝날 만 하면  불청객처럼  다시 찾아왔다. 원고 작업할 때는 책상 앞에서 등을 웅크리고 집중하는 터라 가뜩이나 소화도 안 되는 데 너무 춥다보니 체기를 노상 달고 살아 사혈침까지 샀을 정도였다. 체력은 겨우겨우 버텨내기에 바빴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 올해 나의 목표, 그것은 바로 ‘피로해지지 않는 것’이다. ‘안티 스트레스’나 ‘건강’보다 더 구체적인 실천의 일환으로 나를 피로한 상황으로 몰고 가지 말자는 다짐이다. 스트레스는 때로는 내가 통제하긴커녕 저 쪽에서 알아서 몰려오는 경우가 있다. 건강이라는 상태도 다소 추상적이다. 대신 내 몸의 상태나 감각에 대해 더 예민해지는 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평소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무척 신경을 쓰는 소심한 사람이다. 즉 강해보이고 싶은 탓에, 부탁받은 일은 상대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찍 해주거나, 일이 들어오는 대로 무조건 해낼 수 있다는 듯이 받아버린다. 게다가 성격도 엄청 급하고 다소의 불안증과 강박증 증세도 있어 마감 전날에 벼락치기로 해서 넘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늘 모든 일을 앞당겨서, 즉 내일이나 다음 주에 해도 충분한 일을 굳이 오늘 끌어와서 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주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거기서 값싼 스릴감을 만끽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일을 가진 엄마들이라면 적지 않게 이런 강박증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나의 경우 집에서 일하는 엄마이다 보니 육아의 백업플랜이 오히려 마땅치 않다. 그래서 원고를 쓰면서도 ‘혹시 갑자기 아이가 아프면 어쩌나’ 싶어 늘 일찍일찍 미리미리 써놓았던 것이다. 마음은 갸륵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일을 몰아서 ‘끝장을 보는’ 성격은 나 자신을 격하게 소모시킨다. 소모시킨 후 약으로 커버하니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생활. 아, 이젠 정말 벗어나고 싶다. 과로와 체기와 불안증의 버뮤다 트라이앵글.

 

사실 해결방안은 매우 명백하고 심플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것은 ‘피로해지기 전에 멈추기’. 다. 프리랜서 좋다는 게 뭔가. 바로 스케줄의 자율적인 관리인데 나는 늘 그 자유로움을 경계하며 과하게 통제했던 것이 문제였다. 가령 아이 유치원 하원 픽업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만 더 글을 쓰면 원고를 다 완성시킬 수 있다고 치자. 나는 그럴 때 다다다다 온몸의 마지막 육즙을 다해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결국 끝을 본다. 사실 그 날 저녁 늦게나 다음날 해도 무리가 없는 데 말이다. 그래놓고선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쾡한 눈동자로 아이를 마중나간다. 그 후로 이어지는 저녁밥 차려먹기, 아이씻기기, 아이와 놀아주기 등의 저녁시간은 정말 고통스럽다. 그러면서 왜 내가 아까 거기서 펜을 놓지 못했을까 후회막심이다. 대신 다음날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오전에는 충분히 쉬고 오후부터나 일을 시작해야지 싶다. 한데 왠걸, 다음날 아침이면 마음이 싹 바뀌어 오전부터 또 ‘달리는’ 것이다. 그래놓고 그날 오후쯤이면 또 뻗고 저녁엔 또 다른 자기혐오에 빠지고의 무한반복…

 

그간 일은 무조건 ‘피곤’해야 된다고 생각해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피로회복제를 들이킬 정도까지 고돼야 마치 일을 할 만큼 했다고 착각하는 자기몸 학대의 습관이 뼛속 깊이 배였나보다. 무리다 싶기 바로 직전에 ‘올스톱’을 외치고 편안한 느낌의 상태에서 쉬다가 나중에 다시 일을 하면 훨씬 더 효율도 좋을 터인데.

 

피로해진다는 것은 마음과 몸을 내가 훼손시키는 일이다. 목적을 위해 내 몸과 마음을 도구화시키는 것. 똑같이 바쁘다 해도 피로를 느끼는 사람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일이 나를 부리는가, 아니면 내가 일을 하는가의 차이. 이것은 단순히 ‘게을러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균형일 것이다.

 

이토록 싱그러운 봄의 계절이 마침내 찾아왔는데 나는 지난 겨울에 그랬던 것처럼 빌빌대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 작업실에서 혹은 집에서 ‘아, 이거 거의 내 한계다’ 싶을 때는 툭 전선을 내가 먼저 끊어버릴 수는 없을까? 주변 사람들은 절대 먼저 나를 위해 끊어주질 않으니까. 끊어버린 후 왠지 안절부절 불안하다면?그럴 때는 걷자. 바깥공기를 마시며 잠시 한숨을 돌리며 산책을 해보자. 건물 밖으로 못 나간다면 건물 안에서라도 걷자.  평소의 동선에서 벗어나 긴장감을 풀고 내 몸과 마음을 잠시 원 위치 시켜보자. 또한 현대의 생활에서 ‘피로해지지 않기’ 위해 중요한 것은 양질의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일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 사용 이후 SNS에 중독된 바람에 자기 전에도 누워서 전화기를 보고 있고 새벽에도 잘 깨고, 깨었다 하면 또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어 그간 숙면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 어떻게든 깨어 있을 동안 내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잠만은 충분히 잘 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런 글을 내가 쓰게 된 것도 나이탓일까? 친구들끼리도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지만, 건강도 글로 배우거나 말로 다하는 게 아닐 것이다. 내 몸을 생각해주는 것, 시선을 외부의 정보보다 내 안의 느낌으로 향하게 하는 것. 내 직감과 본능에 의존하며 내 몸을 지켜나가는 것, 아무래도 그것만한 게 없을 것 같다.정말이지,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해내야 할 일은 없고 내 마음에 상처를 줘가면서까지 지켜내야 하는 관계는 없다.


from. 캣우먼 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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