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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기록

생일.

_sran 2009. 11. 25. 01:46


지난주 엄마의 문자.
"다음주 수요일은 무슨날일까요.....?"
달력을 보고 답문을 보낸다.
"엄마님생신!"

수요일날 다른 약속이 있었나 확인하고,
뭐라고 대답하실지 알면서 갖고싶으신거 없으시냐 여쭤보고,
오빠랑 문자 몇번 주고 받으며 봉투에 얼마를 넣을지 정하고
'케익은 오빠가 미역국은 내가' 이렇게 업무분장 끝.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한때 내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이었던 그사람의 생일.

선물을 고르는데만 한달은 고민한 것 같다.
고심끝에 항목을 정한 다음에도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을 살건지 백번쯤 고민했고, 백화점을 세번 갔었다.
한번은 비교대상 리스트에 있던 브랜드가 없는 백화점이었고, 두번째는 거의 마음을 정했지만 원하는 색상이 없었다.

생일날 엄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먹을수 없는 그가 안쓰러웠고,
따뜻하고 맛있는 미역국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 다음엔 어디에서 만날지, 어떤 저녁을 먹을지 고민했고,
예쁘고 둘이 먹기에 과하지 않은 케익을 골랐다.
마음을 담아 편지 두장을 썼다가 당일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좀 후진것같아 급하게 산 생일카드로 대신했다.
만나기로 한 날 입을 옷과, 화장과, 머리모양을 평소보다 3배쯤 신경쓴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만큼 그날은 내게 특별했고, 그에게 잘 해주고 싶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생일이 특별하지 않다면 언제가 특별해야 맞는걸까.
'잘한다' 라는 기준은 너무나 상대적인거지만 난 내게 소중한것을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 한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답답해졌다.
왜 날 울린사람의 생일보다 우리엄마 생일에 더 못하는걸까.
"엄마 미안!"

결국은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만 조금 사려고 갔던 마트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소고기 불고기 두팩이나 담고,
(카드값을 생각하면 호주산인데, 찡할대로 찡해져 버린 마음에 한우로.)
갈아 넣을 배도 큰걸로 하나. 몸에좋은 버섯도.
엄마가 좋아하는 쿠키류의 과자랑 초코렛 요것저것 고르다보니,
어느새 계산대 언니는 봉투를 두개나 꺼내주시네.

엄마는 '어짜피 저녁 나가서 먹을건데 뭐하러 사왔어, 피곤한애가.'라면서도 내심 기뻐하시는 눈치.
1년만에 끓이는 미역국에 몇달만에 하는 버섯 불고기.
카드값을 위해서라도 꼭 맛있어야 하는데..
내일은 아침밥 안먹는 나도 꼭 같이 먹어야하는 일년에 몇 안되는 날이겠군요.



ps. 연애라는건 참 도박과 닮았다.
서로 모르고 살던 두사람이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고는,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누구의 말처럼, 사랑을 안하면 평생 볼수있는데 뭣 때문에 사랑을 해서 일이 년밖에 안봐야 하는걸까.

ps2. 아, '다시는 연애따위 하지않아!' 이건 절대 아니야. 또 다시 누군가의 번호가 단축번호 1번으로 저장 되겠지. 
하지만 궁금한건, 또 다시 한달씩 선물을 고민할만큼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특별하게 느낄수 있을까 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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