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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확 추워졌다. 그 추위에 정신차려서 달력을 보니 올해 겨우 두 달 남았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가벼운 공황상태에 빠진다. 난 대체 올해 뭐했지.

이것이 다 이상한 대한민국 기후 탓이다. 이젠 여름과 겨울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나라 날씨. 거기에 두 번의 국민 명절을 버무리면 대략 이런 흐름으로 한 해가 휙 흘러간다. 
1.        새해로 바뀌어 포부를 가지고 새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한다.
2.        구정 명절 때까진 집행유예처럼 지내다가 구정 지나 비로소 새해 다짐을 위한 워밍업을 시작한다.
3.        새해 다짐을 실행할 시점 즈음에 날씨가 확 더워지며 대략 오 개월간의 긴 여름을 ‘멍 때리며’ 보낸다. 
4.        더위 먹고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추석 명절이 닥치며 ‘아니 벌써 올해 한 해가 이렇게 지났나’ 잠시 놀라다가 내 나이 세어본다.
5.        그래, 남은 반년이나 열심히 해야지,를 외친 게 엊그제 같은데 날씨가 급 겨울로 바뀌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자포자기로 ‘내가 나를 놔버리는’ 상태로 연말까지 지낸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막판 한 두 달을 보내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국가적 행사는 바로 수많은 망년회들. 인간관계 너무나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지연, 학연, 회사사람들, 거래처사람들, 연인, 친구 등 챙겨야 할 사람 다 챙기다 보면 12월 한 달도 부족하다 한다.

고로 요새는 편하고 친한 사람들끼리는 알아서 11월에 미리 망년회를 하자고 하는 습관이 정착해 가는 추세라고 한다. 참 재미있다. ‘미리 여유를 가지고 만나자’라는 게 취지인데 사실 이것은 ‘나중의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지금 쫓기듯이 보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에게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는 것인데, 어차피 먼저 하냐 나중에 하냐의 차이일 뿐인데, 뭔가 급히 서두르는 것이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 대략 우리의 삶은 늘 뭐랄까 ‘숙제 해치우기 급급한’ 삶처럼 보인다. 숙제 일찍 해치워도 나중에 그 빈 자리는 더 큰 숙제로 꽉꽉 채워지기도 하는데.

글/임경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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