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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알고 싶은 건 의욕이나 위로, 여유, 평안 같은 감각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에리코를 만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항상 그녀를 향해 묻는다. 나는 너와 이렇게 함께 있는 것으로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고. 우리는 둘이서 함께 있는 것으로 살아갈 의욕이나 여유나 평안이나 위로를 뛰어넘어 살아가는 것 자체의 깊은 의미에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 것일까, 라고. 너는 그것에 대해 내게 어느 정도 보증을 해줄 수 있는 것일까, 라고.

 가정을 꾸미고 평생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는 대체 어디를 향해 가는 거지? 너에게는 그 목적지가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거니? 만일 보인다면 부디 번거롭게 생각하지 말고 나한테도 가르쳐줘. 실은 나에게는 전혀 보이질 않아. 그러니 불안하지. 무섭도록 불안해. 한없이 넓은 바다 한복판에서 우리가 탄 보트는 정말로 작디 작아. 분명 네 말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푸른빛이 우리를 감싸고 따스한 바람이 불기는 하지.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해봐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 이 보트가 너무 작은 것이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바다라는 존재를 한시도 잊을 수가 없어. 또한 어느 날인가 반드시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이 보트에서 내릴 거라는 것도. 이건 네가 말하는 그런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선택 이전의, 좀 더 중요하고 근원적인 문제야. 사랑이나 동정이나 위로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시간을 초월한 무섭도록 냉철하고 무자비한 문제야.
 
 하지만 에리코의 매끄러운 말 속에 그런 대답은 한 조각도 없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알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을 그녀는 공유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추구하는 건 나처럼 단순한 방법으로는 찾아내지 못한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지, 그녀는 복잡한 방법을 알고 있기나 한 건지.
 
 결국 나는 깨달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저 느끼고 싶을 뿐이다. 누구라도 그렇다. 도모미도 그럴 것이다. 저 박일권도 그러리라. 그리고 오니시 부인 역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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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된건 교토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책을 들어 몇장 읽었는데
교토에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라 교토, 기온, 가라와초등의 지명이 나오는게 반가웠다.
(교토 이야기는 서른 페이지도 채 못채우고 끝나 버렸지만.)

가벼운 일본 연애소설 정도일거라 생각했는데 읽는내내 쓸쓸한 기운이 번지다가,
역자 후기를 두번 정독하고도 어렵고 답답한 마음이 남는다.

'시대와 사람을 마주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을 명료하고 긴장감 넘치는 문장으로 전하는
시라이시의 삶의 목적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과 깊은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대표작.' 이라는데
사실 그런건 잘 모르겠고
그저 언젠가 한번 다시 찬찬히 읽어 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언제가 되었든 분명 다른 생각이 들 것 같다.
지금 바로는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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